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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미래작가상 전시는 지난해 2022 미래작가상 공모를 통해 선정한 김예원, 김혜지, 이우선, 이도현, 정예준의 5인전으로,
김희천 미술작가 ∙ 장민승 시각예술가 ∙ 전명은 사진가 ∙ 정희승 사진가의 1:1 튜터링과 오형근 사진가의 마스터 튜터링으로 성장한 작업을 선보이는 전시다.
김예원의 ‘흔한 풍경’은 여가시간을 의무적으로 보내고 있는 일상을 촬영한 작업으로 주말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이는 모순적 현실을 포착하고 있다.
김혜지의 ‘바탕과 바늘’은 시선의 끝을 따라 멈추는 프레임 속의 정적인 풍경을 담고 있으며 사유하고 있는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살던 고향은’ 작업에서 이우선은 실향민인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손자의 시각으로 이산가족의 슬픔과 그리움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있다.
이도현의 ‘Manual’은 비언어적인 언어를 담아내고 있으며 발화자를 통해 미묘한 몸짓을 기록한 영상 작업이다.
정예준의 ‘스티로폼맨’은 군 복무 시절의 경험을 3개의 서사로 풀어낸 작업이며 비선형 구조로 전개되는 방식이 흥미롭다.
■ 작업노트
김예원 흔한 풍경
주말이라는 시간은 지독히도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의무적으로 가족들끼리 여가 시간을 보낸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길이 막히지 않는 장소를 선택해 여행을 가고, 일요일 아침에는 암묵적으로 교회를 가야만 했다. 주 5일제를 살아가는 평범한 집안 속에서 주말이란 시간은 삶에 있어서 명분이었고, 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조차 개인만의 자유를 느끼고 휴식을 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늘 의문 속에서 보낸 주말은 마치 일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집단 속에서조차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건 꽤나 씁쓸했고, 이런 주말이 좋기도 나쁘기도 한 양가감정 속에서 다른 가족들의 삶도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바라본 현실 속 사람들은 마치 어렸을 적 미술시간에 만든 데칼코마니와 닮아 있었다. 똑같은 문양과 색감들이 서로 마주보며 겹쳐진 후 좌우 반전이 되어 또 하나의 상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주말 속 사람들의 행동도 노동의 시간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 데칼코마니처럼 이들이 모여 또 하나의 상을 만들어 낼 때면(풍경) 그것은 그들의 모순이라고 여겼고, 내가 생각하는 지독한 현실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경’이라는 단어는 자연의 많은 것들이 모였을 때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이지만 내가 찍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도 사실은 풍경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흔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많은 가족들이 보기 좋은 풍경 속에서 지독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이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김혜지 Kim Hazy 아무데도 가지않는다
이것을 풍경이라고 불러야 하나. 창문을 통해 보는 하늘은 예뻤다. 그리고 내려가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여기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었다. 길을 잃은 듯 했다. 추락 같기도, 비행 같기도 했다. 이것을 뭐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차 안엔 찬구들이 있었다. 막힌 곳이 없는 것만 같은 시공간이었다. 멈춰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네비게이션은 자꾸 다른 길을 알려 준다고 말한다. 저기로 가야 하는데. 서린 겨울이 오면 풍경들이 모두 비슷한 영혼을 가진 것만 같다. 생각을 한다. 외곽에 나가서 사진을 찍는 일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아니고, 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이다. 라고 명명 하기엔 약간 부족 한 감이 있지만, 어딘가에 도움이 될 거라고 들었던 생각은 망각이 빨랐다. 그저 한번 하고 싶은 일이 점점 습관처럼 된 것이었다. 형식 없는 소재들과 소재 없는 형식들.. 사진을 찍을 때면 정말 이게 나를 위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게워내는 느낌이 좋았다. 유령마을의 풍경들을 담고 싶었다. 처음 이 생각을 했을 때는 풍경이 주는 정적임이 좋았던 것 같다. 미디어에 널린 사진들의 프레임 바깥이 궁금했다. 직접 보고 직접 담아내고 싶었다. 쉽게 볼 수 없는 독립된 형체의 건물, 형태가 심미적 이미지라 생각했다. 활력을 상실한 빈 공간, 오랜 시간의 축척, 허물들, 고요, 정적, 공허, 불안, 창백, 낯설음, 어쩌고. 그것들은 우직하게 몇 년을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자라고 있다. 현실감을 이탈한 풍경은 재개발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오묘한 표정을 짓는다. 네비게이션에 일부로 안 띄려는 듯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편리는 발전되고 그곳들은 금방 발각되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출사지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발각과 망각이 공존하는 장소가 펼쳐진다. 이런 곳으로 갈 때는 서울 한복판에서 느낄 수 없는 일상의 감각을 벗어나 어떠한 차원으로 가는것 같았다. 그곳들이 변하지 않았음 하는 나의 것도, 그곳을 변화시킬 세계의 것도 모두 같은 욕망이라 명명한다. 풍요의 시대가 짙어질 수록 빈곤함을 원한다. 하지만 풍요로 넘쳐나는 도시는 동시에 빈곤하다. 그래서 나는 빈곤뿐인 장소를 찾는 걸까. 방치되고 고립된 장소가 주는 진심을 담고 싶은 걸까. 맞다고 단언 할 수는 없는 비틀어진 마음이다. 이런 감정이 드는 데는 내가 만들어낸 사진은 프레임이 존재한다. 앞에서 말한 프레임 바깥의 공간이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분리와 연결로 만들어낸 프레임의 바깥은 혼돈과 위협이 있다. 수미상관이다. 나의 비틀어진 욕망을 채집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만들다 할 때 사진이란 매체의 매개체가 되어간다. 수단일 그곳의 자연미에 열광하지 않은 그곳의 네이티브에게 나의 의미는 의미가 없다. 풍경을 이념화 시키는 것도 내키지 않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지나간 것인 도식이자 개념이다. 나는 그 곳을 볼 순 있지만 그곳을 알지 못한다. 사진을 찍고 말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말한다. 해방의 댓가는 뒤탈이 있다.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 지 고민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진들의 기능을 생각한다. 기술 복제와 해시태그로 인해 범람하는 이미지 세대에서. 사진은 음악처럼 피할 수 없다. 이미 핸드폰에 있다. 이미 거리에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어느정도 태양을 피할 수는 있지만 그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과 음악은 피할 수 없다. 좋아요와 친구뿐이 남게되었다. 역설적이다. 그리고 그것들에 인상을 쓰며 사유한다. 호흡을 하는 기분이 든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가. 쓴다는 것, 기록하는 것, 잊지 않으려고 하는것, 망각되지 않으려고 하는것의 생각들이 전이된다. 사진보다 어쩌면 더 커보이는 프레임이 그것을 나타낸다. 돌아온 대답은 지평선 너머의 하늘을 보고 메아리를 치는것 같다. 원인에서 결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다시 원인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원위치 라는 것은 아니다. 같다는 뜻도. 이 사진은 그렇게 크게 힘이 없다. 힘내서 소리치지도 않는다. 사진을 찍을수록 사진 혼자 존립할 수 없을 것 만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구나 스쳐 지나가는 고민에 대해. 뭘 위하는지. 뭘 의하는지. 나는 다시 사람들이 떠난 빈자리로 찾아간다. 텅 빈 공간 사람들이 떠난 곳을 찾고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고, 썰물처럼 내려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우리집 마당엔 그렇게 바다가 자라고 있다.
이우선 나의 살던 고향은 <2021 ~ Ongoing>
<나의 살던 고향은> 연작은 1933년 4월 14일 평안남도 순천군 북창면에서 태어나 6.25 전쟁 발발 후 남쪽으로 내려와 평생을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나의 할아버지 이채호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실향민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올해 초, 우리 집 바로 옆으로 이사를 오셨다. 가족들 중 그 누구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90세의 나이를 바라보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이사는 점차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6.25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실향민 1세대는 최소 연령 76세에서 최대 100세 이상에 이르는 등 고령화가 심각해진 상황이고, 최근 남북 관계는 언제 통일될지 모르는 분단 고착기에 접어들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실향민 1세대가 평생을 그리워한 혈연을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이렇듯 실향민과 이산가족 문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평생 보지 못할 수 있다’ 라는 매우 인도주의적이고 휴머니즘 적인 이슈임에도 불고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와 논리로 인해 함께 있어야 할 가족들이 70년 이상이나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곁에서 전쟁은 결코 기억 저 깊은 곳으로 사라진 ‘과거’ 가 아니라 끝나지 않은 아픔이고 아물지 않는 상처임을 말해주는 ‘현재’ 라는 사실을 상기 시켜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나는 이 일련의 이미지들을 통해 분단과 단절로 점철되어 온 실향민 분들에게 따듯한 위로의 손을 내밀고,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에 잠시나마 귀 기울이며, 그들에게 공감해 이를 오래도록 잊지 않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더 늦기 전에 실향민 분들의 이산 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나의 할아버지에게 이 작업을 바친다.
이도현 Manual
들어가며:
나는 〈Manual〉을 통해 곧 소멸할지도 모를 것들을 붙잡고 싶었다. 가령 매일 우리가 함께 나눈 대화의 순간 속에서 말과 말 사이의 행간을. 그 행간에 담긴 포착되기 힘든 정서와 같은 것들을.
0: ‘인류가 곧 멸망한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한동안 나는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사에서 연일 전쟁과 재해 속보가 들려오고, 그 어떤 이유로든 앞다투어 인간이 보냈던 한 시절이 마지막을 향해 가는 듯했다. 인류가 곧 멸망한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그 노래는 지금은 알지 못할 누군가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며 한켠에는 마지막 그 이후를 상상하곤 했다.
1: in gola
그래서였을까 한여름 빛이 선명한 날에 나는 노래를 부르는 학원에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성대로 소리를 내는 법부터 배웠다. 발성이라고 했다. 종종 내게 인골라(in gola)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소리가 목 안에 갇혀 머무르고 있다고. 그때 처음 자연스레 입을 열어 단어를 내뱉는 일이 당연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행위는 언제든지 사멸할 수 있으며, 온 힘을 다해 반복하고 전해져야 마땅히 이뤄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2: 새의 언어
터키의 흑해 동부지역에는 ‘쿠시코이(Kuşköy)’라는 새의 마을이 있다고 한다. 가파른 산과 험난한 지형 때문에 그 지역에 살던 이들은 휘파람으로 대화한다. 그들은 입 속에서 혀를 일정한 형태로 만든 뒤 성대를 이용해서 매우 광범위한 음소를 발음하여 소리를 내는데 이를 위해 손가락과 혀, 이빨, 입술, 양 볼을 이용한다. 이때 다양한 날카로운 소리가 나고, 다양한 음절을 기반으로 성대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소리와 음색을 결합하여 언어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 언어를 사용하는데 작용하는 결정적 요인은 휘파람 언어 기술로 이미 정착된 구(phrase)들을 모방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환경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 수 있는 한 사례이지만, 이 언어는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개인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더 이상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휘파람으로 말을 건넬 이유가 없어진 것이 이유이다.
3: 말하기의 몸짓
언어는 어떻게 기억되고 무엇으로 인해 공유되어 온 것일까. 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거나 글로 쓰인 삶의 한 부분을 외우고 연습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로부터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담은 발화의 모습들을 관찰하고자 했다. 이어 연기 연습 영상을 찾아보며 그 속에서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행간은 연기의 연속이지만 나에게는 삶의 모방으로 다가왔다. 나아가 말하기, 그 이전에 말하기의 동기란 “인간 조건의 경계선들을 밀어내고 인간의 자유의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말하게 하고, 말할 수 없는 말들을 말하는 것”이라는 구절처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4: 촬영하며 발견한 것들
그들을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전신을 담은 장면을 촬영했다. 동시에 액정 속 인물과 현실의 인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 코, 입, 주름 짓는 미간과 손짓, 발짓을 쫓기 시작했다. 더 가까이 다가가며 그들의 미세한 행동과 변화를 담아냈다. 이 장면들을 반복해서 재생하며 느낀 것은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은 언어를 비워내고도 이 몸짓이 무엇을 향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이 몸짓은 때로는 가로막히고 비워지며 왜곡되기도 한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가며:
때문에 먼 훗날 서로를 마주한 대화가 아주 희미해지고야 마는 날이 오면, 이 영상이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기록이자 매뉴얼이 되어 오늘을 잊지 않아 주기를 바란다.
정예준 스티로폼맨
단열, 포장, 건축 등 이름을 달리하며 여러 유용한 용도로 쓰이는 스티로폼이 이제는 도처에 없는 곳이 없다. 최근에는 배달 시장이 발전하면서 신선제품 포장용의 스티로폼 사용량이 더욱이 급증하였고, 뒤늦게 폐기 문제를 두고 재활용이 불편하고 오랫동안 썩지 않는다며 안타깝게도 골칫거리로 전락한 처지이다.
한때 서해안 군사분계선이 근접한 교동도에서 경계근무병으로 병역의무를 하던 나는 조류를 따라 유랑하는 부표에 몸을 맡겨 귀순한 탈북인을 마주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때의 해양 쓰레기인 스티로폼은 당장에 구명대가 되어 그를 망망대해의 공포스런 외로움에서 구제해낸 것이다. 한편 나는 국가 안보를 위해 충성하며 가지게 된 자긍심과 내무 부조리로 인한 피로를 일시에 겪고 있었고, 이 사건은 헌신할 나라가 없는 바다 국경에서 부유하는 부표를 경계의 대상에서 동경의 대상으로 느끼도록 했었다.
영상<스티로폼맨>은 당시 귀순 사건을 기반으로 꾸며진 픽션이다. 과거의 나를 1인칭의 ‘피사체’로 투영시킨다. 전역과 함께 금지와 명령 속의 사회가 종료된 줄 알았지만, 무한해 보이는 자유와 이윤 추구의 세계는 타자에 대한 경계심을 스스로에게 까지 치닫게 했다. 끝내 ‘청년’은 이념의 끝자락인 초소에서 경계 밖을 흘겨 보던 지난 군시절의 자신을 기억하고, 동경했던 부표가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