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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 장경수 - 최후의 툰드라,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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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에 만난 프로듀서 장경수님 이야기
Canon. <최후의 툰드라>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좋아하시니 행복하시겠어요.
네. 특히 작품을 보신 분들께서 화면이 뭔가 다르다라고 말씀 많이 해주세요. 전체적으로 화면이 세련되고, 따뜻한 느낌이 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리고 기존의 영상들과 달리 색감도 풍부하고 인상도 강하다고 하세요. 나중에 DSLR로 촬영되었단 것이 알려지면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하시죠.
Canon. 특별히 툰드라를 촬영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전부터 툰드라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 방송에서 시도해보지 않았던 장소였거든요.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그 지역에 들어갔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봤을 때 새로운 그림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사회나 지리 수업 시간에 배우기는 하지만 실제로 정확한 인식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일반적으로 툰드라라고 하면 북위 66도 2부, 나무가 나지 않는 땅을 의미하죠. 그리고 지구의 육지 면적의 1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해요. 전체 툰드라 중의 2/3가 시베리아-러시아 툰드라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툰드라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지역은 알래스카-북미 툰드라예요. 러시아 툰드라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허가가 힘들고, 접근이 힘든 곳이라 고민을 많이 하다가 시도하게 되었죠.
<툰드라의 자연> ⓒ sbs
Canon. 그렇다면 ‘툰드라’는 어떤 곳인가요?
전세계 에너지 매장량의 대부분이 툰드라에 있다고 해요. 현재 알래스카 툰드라도 엄청나게 개발되고 있지만 러시아 같은 경우, 천연 가스 생산량의 90%, 석유 생산량의 70%가 툰드라에 있다고 하거든요. 러시아가 천연가스 생산량이 세계 1위인데 말이죠. 이만큼 자원이 풍부한 곳이 바로 툰드라예요. 지금까지는 추워서 개발이 잘 안됐죠. 그런데, 온난화로 따뜻해지니까 개발되기 시작하고, 각국에서 에너지를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이게 된 거예요. 문제는 온난화가 되니까 얼음이 녹아서 수백만 년 전 매장된 생물체들이 분해되면서 메탄가스가 올라오는데, 메탄 가스가 이산화탄소의 24배의 온실 효과를 내거든요. 그러면서 온난화가 가속화 되는 것이죠. 이것이 지구 기후의 격변을 야기할 것이라는 무서운 논문도 나오고 있죠. 이러한 과정에서 툰드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명을 경험하기 시작했고요. 이렇듯 툰드라가 여러 가지 지구 환경의 아이러니를 보여줄 수 있는 땅이라는 생각을 했고, 격변하는 툰드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보고 싶기도 했어요.
Canon. 통상적으로 다큐멘터리 대작은 어느 정도의 준비를 하고 촬영에 들어가나요?
굉장히 디테일하게 기획을 해요. 거의 책 한 권을 쓴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그 지역에 관련된 책과 논문 등을 모두 읽고, 기획을 하죠. 하지만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요. 기본적인 자료 조사는 충분히 하지만 그 지역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작품에 어떤 색을 입힐 것인지 등은 현장 안에 들어가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죠. 이번 툰드라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는 지구 환경 문제를 보고 들어 갔지만 그 안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지구 환경 문제 를 언급하는 방향으로 톤이 완전히 바뀌었죠.
Canon. 최후의 툰드라의 경우, 상당한 제작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들었어요.
촬영 일수로는 300일 정도이고, 실제 작업 기간으로 따지면 1년 정도 됩니다. 작년 11월부터 제작에 들어갔어요. 방송 사상, 툰드라를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취재한 경우가 없어요. BBC가 4주정도 겨울을 찍은 것이 최장 기간 이에요. 툰드라의 1년 4계절을 담아낸 것은 SBS가 세계 최초라고 하더군요. 사실 그만큼 여러 가지 측면에서 힘든 부분이 많은 지역이기도 해요.
Canon. 툰드라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잖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군가요?
톡차 아저씨라고 50대 초반의 아저씨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분 같은 경우에는 러시아에서 중학교까지 교육을 받고 툰드라로 돌아오셨어요. 그 분과 한달 정도 함께 지냈는데요. 그분한테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진심으로 그분을 존경하게 되었어요. 저에게 툰드라의 철학이 뭔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주셨어요. 하루는 저에게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를 들고, 정말 한국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다고 하시면서 저한테 질문을 하시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한국의 경제 수준이나 GDP 같은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분께서 저에게 하신 질문은 한국에 호수가 몇 개이며, 어떤 종류의 나무가 사는지, 동물은 어떤 것들 것 있는지 등이었어요. 삶에 대한 시선이 저희와는 완전히 다른 거죠.
사실 처음 톡차 아저씨 집에 4명이 무작정 찾아가서 “먹여 주고 재워주세요. 일 다 할게요”라고 했었거든요. 그 분께서 그런 저희를 한 달 동안 받아주셨어요. 사실 툰드라에서 한달 동안 네명이 먹고 자고 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거든요. 그 사람들은 돈이 필요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희가 엄청난 짐으로 생각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톡차 아저씨네 집을 떠날 때 막무가내로 찾아온 외국인을 왜 받아줬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당신들은 외국인이 아니다. 당신 은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당신을 무조건 받아줬고, 이건 툰드라의 법칙이다.” 그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았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깊이나 행복감은 학력이나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톡차 아저씨와 그의 가족> ⓒ sbs
Canon.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어린 녀석들이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내는 것도 너무 대견하고요.
그 곳 아이들은 철 안든 어른보다 나아요. 정말 어른스러워요. 거기 아이들은 본인이 하나의 역할을 하는 것을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해요. 자기의 역할 모델이 부모님밖에 없다 보니까 부모님이 하는 일들을 그대로 따라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곳은 이사를 포함한 육체적인 일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모든 식구들이 자기 역할을 분명하게 갖고 있고 부지런히 해야만 하죠.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라도 자기 순록을 몰고, 자기 썰매는 스스로 몰고, 물고기도 잡으려고 하고 그러는 것이죠.
<꼴랴와 그리샤 형제> ⓒ sbs
Canon. 다큐멘터리 촬영은 대상과의 관계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곳에서 자연스러운 장면을 담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이 있나요?
네네츠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친해지기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카메라를 들이대면 하던 일도 안하고 피하기 때문에 일단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해요. 유럽 방송들은 가끔씩 들어와서 출연료를 주고, 기계적으로 접근 하는데,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거든요. 저희는 톡차 아저씨네 집에서 한달 정도 머물면서 그들에게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네네츠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이틀에 한번씩 이사를 해요. 이사를 하면 제일 먼저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춤(텐트와 비슷한) 을 치고, 그 다음에는 가까운 호수에 가서 물을 떠요. 취재 초반에 이사를 마치고 춤을 다 쳤길래 물을 뜨러 가겠다 싶어서 호숫가에 가서 기다렸죠. 아니나 다를까 꼴랴가 와서 물을 뜨길래 제가 꼴랴 물통을 들어줬어요. 그 후에 꼴랴와 그리샤의 어머니께서 저희를 좋게 보셔서 저희를 많이 도와주셨죠. 진심으로 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Canon. 최후의 툰드라 하면 EOS 5D Mark II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특별히 이 장비를 선택하신 이유가있나요?
처음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 카메라를 고려했을 때, ENG를 들고 툰드라에 들어가기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러시아가 아직까지 보안검문의 측면에서 폐쇄적이기 때문에 장비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었고, 게다가 툰드라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방송 조명을 사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었어요. 그래서 휴대용 조명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조명에 ENG 카메라를 사용하면 화면 상태가 매우 안 좋거든요.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인 춤이 매우 좁고 어두워요. 그런 상황에서 좋은 화질로 촬영하기 위해서는 초광각 렌즈와 초 고감도를 가진 카메라가 필요했죠.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원주민들이 카메라를 싫어하고, 낯설어하기 때문에 접근성의 측면에서도 작은 크기의 카메라가 유리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겨울에는 툰드라에 눈과 얼음이 쌓여있어서 바퀴가 여섯 개 달린 수륙양육 차량이나 어디든 달릴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장갑차처럼 생긴 ‘비제호드’라는 특수차량을 타고 다닐 수 있는데, 6월부터 10월까지는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바닥이 질퍽해지기 때문에 도저히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상태가 되요. 사람들도 걸어 다니면 늪처럼 빠질 정도로 심하거든요. 그때는 이동 수단이 두 가지 밖에 없어요. 헬기와 썰매. 항상 헬기를 타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주로 썰매를 타고 이동했는데, 저희처럼 썰매에 서툰 사람들은 썰매에서 매우 자주 떨어져요. 이러한 경우, 큰 카메라를 사용하면 장비가 다칠 확률이 매우 높았을 것 같아요. 작은 카메라는 떨어지더라도 촬영자가 안고 있으면 보호하기 쉽죠. 접근성이나 휴대성, 화질, 장비 운용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작은 카메라가 유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선택하게 되었어요.
<그들의 생활 공간인 춤> ⓒ sbs
Canon. 장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국내에서 DSLR로 다큐멘터리 시도한 경우가 전무하기 때문에 준비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DSLR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로 결심하고, 확신을 가지기까지 약 3개월 동안 여러 가지 자료를 찾으면서 공부를 했어요. PD가 장비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니까요. 2009년 10월부터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국내에 DSLR로 영상을 촬영해 보신 분들이 많지 않았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경우는 전혀 없었어요. 요즘에는 많아졌지만 말이죠. DSLR로 영상을 촬영해보신 유경험자들을 만나서 현실적으로 5D Mark II로 다큐멘터리 촬영이 가능한지부터 메모리 카드 용량, 연속 촬영 가능 여부, 화질의 열화 문제,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여러 가지를 부분을 의논하고, 참고했어요. 해외 블로그도 많이 뒤져보고, 5D Mark II로 촬영한 영상들도 찾아보고 검토를 했어요. 그러면서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생겼지요.
선택을 하고 나니 그 다음에는 렌즈의 종류, 바디의 수, 포스트 프로덕션과 같은 상세한 장비 운용에 대해 고민해야 했어요. 저희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영화 나 드라마와는 달리 피사체의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어요. 포커스 팔로우, 노출, 색온도, 감도 등을 계획적으로 설정하고 촬영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특히 네네츠족 같은 경우에는 전혀 방송에 협조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방송의 의미도 잘 모르시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찍혀주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모든 것을 그 사람들 생활에 맞춰줘야 하는데 경험이 부족하니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툰드라의 아이들> ⓒ sbs
Canon. 문제점은 없었나요?
5D Mark II로 동영상을 촬영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안정적인 촬영이 어렵다는 거였어요. ENG나 6mm 캠코더의 경우에는 일단 몸에 부착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립에 걸어서 견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성이 확보되거든요. 사실 다큐멘터리 촬영에서는 삼각대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5D Mark II는 카메라 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손의 떨림과 다리의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져서 화면 상에서 눈이 아프거나 어지러워서 볼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저희는 카메라를 몸에 붙일 수 있는 보조 견착대를 별도로 구매해서 사용했어요. 지금 전세계적으로 5D Mark II와 관련한 보조 액세서리 시장이 엄청나게 잘되고 있어요. 이것은 5D Mark II가 그만큼 장점이 많지만 그 자체로는 한계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저희는 뷰 파인더를 장착해서 보다 편리하고 정확하게 수동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했고, 포커스 팔로우도 보조 장비를 장착해서 해결 했어요. 이것도 하나의 큰 일이었는데요. 다양한 부가 장비를 사용해보고,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최적의 장비를 선택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그렇게 준비했음에도, 현장에 가서 현장 상황에 따라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해결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하고 그랬죠.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 아주 중요한 문제는 오디오였어요.자체 내장 마이크는 오디오가 날카롭게 픽업되고, 주변 소음이 많이 녹음되고, 화이트 노이즈가 심각해서 사용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IS(Image Stabilizer) 기능이 들어있는 렌즈를 사용할 때에는 안정화되면서 발생하는 소리가 그대로 입력되기 때문에 IS 기능은 전혀 활용할 수 없었고요. 그래서 저희는 외장 마이크를 사용해서 오디오 문제를 해결했는데요. 그러면서 카메라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장비가 복잡해졌죠.
<실사로 촬영한 환상적인 툰드라 오로라> ⓒ sbs
Canon. DSLR이기 때문에 특별히 유리했던 장면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DSLR을 사용했기 때문에 독특한 영상을 구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전반적으로는 영상적인 측면에서 얕은 피사계 심도로 인해서 피사체에 집중할 수 있다 는 장점이 있고, 고화소로 높은 화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유리했어요. 그리고 캐논 특유의 따뜻한 색감과 높은 채도 때문에 고급스러운 영상미를 구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붉은색과 푸른색 계열이 정말 강렬하게 담기더라고요. 특히 밤 하늘의 오로라나 별 궤적은 유연한 셔터 스피드와 높은 감도를 사용할 수 있는 DSLR의 특징 때문에 촬영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어요. 다른 곳에서는 CG 처리를 해야 가능한 장면까지도 실사로 담아낼 수 있었죠. 그리고 꽃이나 벌 같은 것을 찍더라도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독특한 영상미를 구현할 수 있었고, 좁고 어두운 춤 안에서 촛불 하나만 켜고도 따뜻하고 선명한 촬영이 가능하니 엄청나죠.
<툰드라를 촬영하시는 촬영 감독님들> ⓒ sbs
Canon. 툰드라는 오지인데다가 매우 춥기 때문에 촬영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추운 지방에서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게 액정이에요. 액정이 나가거나 혹은 얼어서 느리게 반응하곤 하죠. 그런데 이번에 큰 문제 없이 잘 작동하는 편이었어요. 조금 느리게 반응하다가도 온도가 다시 올라가면 작동하고 그랬어요. 또 레코딩을 시작하면 카메라 자체에서 어느 정도의 열이 나기도 하니까 조금 보완이 되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날씨가 추우면 배터리가 금방 떨어지는 문제도 있어요. 특히 툰드라에는 전기가 없으니까요. 발전기를 가져가기는 했지만 기름을 아껴야 하고, 현지인들이 발전기 돌리는 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가끔씩만 발전기를 돌려서 충전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외장하드도 충전식을 사용하고, 한번 발전기를 돌릴 때 배터리도 넉넉히 충전해서 사용했죠. 노하우도 있는데, 추울 때 배터리가 빨리 닳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항상 배터리를 품에 안고 따뜻하게 만들어서 사용했어요.
<모터 패러글라이딩으로 완성한 순록의 이동> ⓒ sbs
Canon. 장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꾸려가셨나요?
캐논의 EOS 5D Mark II를 기본으로 했고요. 촬영팀을 두 팀으로 구성했는데, 저희 팀은 조연출을 포기하고 카메라 감독님 두 분과 저, 이렇게 셋으로 구성했고, 다른 팀은 카메라 감독님 한 분, 조연출 한 분, 연출 한 분 이렇게 세 분으로 구성했어요. 각 촬영 감독님 당 카메라 바디를 두 대씩 가지고 가서 총 여섯 대의 바디를 사용했고요. 렌즈 같은 경우에는 저희 팀은 24-105mm, 다른 팀은 24-70mm을 기본으로 했어요. 하나의 카메라에는 16-35mm나 70-200mm같은 조금은 특별한 렌즈를 달아서 상황이 바뀌어도 렌즈를 마운트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 밖에도 70-300mm, 500mm와 같은 망원 렌즈, 50mm의 밝은 표준 단렌즈, 100mm 접사 렌즈, 24mmTS 렌즈 등 다양하게 가져갔어요.
그 밖에도 헬멧 위에 부착해서 촬영하는 작은 카메라 세 대를 가져가서 촬영했어요. 이 카메라는 자동차나 순록이 달릴 때, 물을 뿌릴 때, 썰매 앞모습을 찍을 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어요. 그리고 6M 지미집을 툰드라까지 가져가서 5D Mark II를 달아서 사용했어요. 항공 촬영도 했어요. 처음에는 시네 플렉스도 생각 했었지만 러시아에 없어서 활용 못했고, 헬기도 생각했었는데 좋은 그림이 안 나오고 근접 촬영도 어려워서 과감하게 모토 패러글라이딩을 시도했어요. 장비를 가져가서 거기에 5D Mark II를 달아 순록이 달리는 모습 등을 촬영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그림이 나와서 만족했어요.
<부가 액세서리가 장착된 EOS 5D Mark II의 모습> ⓒ sbs
Canon. DSLR을 선택하신 것에 대해서 결과적으로 만족하시나요?
성공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걸 활용하지 않았으면 이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저희는 다큐멘터리를 영화로까지 제작 하고 있기 때문에 촬영 기법과 영상의 측면에서 너무나 효과를 많이 봤어요. 저희 작품이 2월 중순에 30개 관에서 개봉될 예정이거든요. 5D Mark II로 촬영한 영상의 매력을 큰 스크린에서 훨씬 효과적으로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Canon.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뿌듯하기도 하겠지만 너무 고생스러울 것 같아요.
저는 안 힘들어요. 프로그램은 다 힘들잖아요. 드라마든 예능이든...... 할 때는 다 힘들고 도망가고 싶죠. 그런데, 지나고 나면 그것이 추억이고 행복이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하는 것 같아요.
Canon. 스틸 영상과 동영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장비가 저렴해지고 슬림해짐에 따라 제작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예상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변화는 저희 다큐멘터리가 이슈가 되고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보셨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방송 시장은 단기간에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아요. 저는 그렇게 봐요. 왜냐하면 DSLR로 영상을 찍기에는 아직까지 어려운 점이 많거든요. 아직까지는 주목적이 스틸이고, 스틸 기반이기 때문에 불편한 부분이 많아요. 동영상 같은 경우, 모든 조절은 수동으로 해야 하고,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경험 많고 뛰어난 촬영 감독님들만이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비의 장점이 많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경우에는 분명히 선택을 할 것이고, 점차 확산되겠죠. 장비가 동영상에 유리 하게 조금 더 친절해 진다면 확산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Canon. 최근 국내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들이 대중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고, 작품의 완성도도 매우 뛰어나지만 그에 비해 투자 비용이나 제작 편수는 부족한 것 같아요.
툰드라 같은 경우에는 한국방송위원회에서 3억을 지원받았고, 회사에서 6억을 투자했어요. 사실 그 정도 예산을 배정 받기도 힘들어요. 아마존의 눈물 이후로 한국 다큐멘터리가 한 단계 도약하려는 시점에 있어요.이 시점에 다큐멘터리를 좀 밀어줘야 할 것 같아요. 제작자로서 국가나 기업체에서 많은 지원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Canon.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연출자로서 <최후의 툰드라>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문명이 발달하면서 모든 것들이 편리하고 풍요로워졌지만 정말 풍요로워지기만 했는지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문명의 발달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 혹은 잊어버린 것은 없는지 말이죠. 그리고 툰드라 사람들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랬듯 시청자들도 자신의 삶을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접근하기 어렵고, 혹독하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운 툰드라. 그는 완벽하게 자연과 공존하는 그곳 사람들에게서 자연에 대한 경외를 배웠다고 했다. 그가 툰드라에서 만들어 온 작품은 이러한 그의 생각에 절대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훌륭했다. 모든 사람이 툰드라 사람들처럼 살수 없고, 환경 운동가가 될 수도 없지만 다큐멘터리를 본 수 많은 시청자들이 그들의 삶을 존중할 수 있고,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차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가 정성과 사랑으로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다음에는 어떤 주제와 어떤 영상을 가지고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Interviewer _ 노연숙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디지털 사진 전공, 박사 수료
<사진 유저를 위한 디지털 암실>, <디지털 사진 A to Z>, <사진이 즐거워지는 디지털 카메라> 저자
홈페이지: www.full-swi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