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고로1900-1993
우찌다 사부로1899-1982
마에다 다께오1909-1975
정밀 과학 기기 연구소가 설립되었던
다께카와야 빌딩
일본 내 생산된 고급 35mm 카메라의 서막 라이카와 콘택스 - 가장 앞선 35mm 포컬 플래인 셔터 카메라의 두 대표 상표 1932년에 “라이카 모델 II”가 소개되고, 1933년에 “콘탁스 모델”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세계 카메라 왕국 독일의 자존심인 이 두 상표는 전세계 카메라 팬들을 만족시켰으며 그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최상급 카메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일자리였던 은행에 취직한 일본 유명 대학 졸업생의 평균 초임이 약 월 70엔 이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라이카 카메라의 가격은 420엔이었습니다. 이러한 최고급 카메라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다까네 노하나(잡을 수 없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라이카 모델 II” 카메라를 분해하여 그 내부 작동을 연구함으로써 최초의 일본 내 포컬플래인 셔터 거리계 카메라(이하 35mm 거리계 카메라로 칭함)의 제작을 시도한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시다 고로(1900-1993) 씨였습니다. 요시다 씨는 히로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중학교 과정을 마치기 전에 도쿄로 와서 활동 사진 카메라와 영사기를 수리하고 개조하는 회사의 견습공이 되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 그의 나이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그는 직무상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자주 여행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상하이에서 만난 한 미국 무역상 로이 E 딜레이 씨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후 고급 35mm 거리계 카메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왜 카메라 부품을 사러 여기까지 왔습니까? 당신 나라는 이미 훌륭한 군함과 비행기를 생산했습니다. 당신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군함을 생산할 수 있다면 고유의 카메라 부품을 못 만들 이유가 없지요.“ 천성적으로 요시다 씨는 기계와 기기들을 수리하는 일을 좋아했고, 이미 그는 활동 사진 카메라와 영사기를 수리하고 개조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시다 씨가 카메라 제조에 매력을 느꼈음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일본제 고급 35mm 카메라를 만들기 위해 라이카를 분해했던 동기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 을 받았을 때, 요시다씨는 후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나는 특별한 계획 없이 단순히 부품을 보려고 그냥 그 카메라를 분해했습니다. 카메라 안에 다이아몬드와 같은 특별한 물건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메라의 부품들은 황동, 알루미늄, 철 및 고무로 만들어진 물건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값싼 물건들이 조립되어 카메라가 되었을 때 엄청난 가격이 된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 사실은 나를 무척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처남 우찌다 사부로(1899-1982)와 우찌다의 옛 수하였던 마에다 다께오(1909-1975)와 함께, 요시다 씨는 35mm 거리계 카메라를 개발하기 위해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그 연구소는 도쿄 롭퐁기 아자부 구(현재 미나토 구)에 있는 우아한 3층 아파트(다케카와야 빌딩)의 한 방에 위치했습니다. 그러나 요시다 씨는 카메라를 생산하기 위해 연구소가 취한 접근 방식이 그가 원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았으므로 1934년 가을에 그 연구소를 떠났습니다.
“가장 좋은 잠수함은 이고입니다. 가장 좋은 비행기는 모델 92입니다. 가장 좋은 카메라는 관음입니다. 그들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입니다.”
이 글은 아사히 카메라 잡지 1934년 6월호에 실렸던 일본에서 생산된 35mm 거리계 카메 라의 표준형 “관음”에 관한 대담한 광고 카피였습니다.
표준형 카메라의 이름은 요시다 씨가 “자비의 불교 여신, 관음”의 신봉자였으므로 “관음” 이라 지었습니다. 카메라 로고는 수천 개의 팔을 가진 관음 여신을 묘사했고, 렌즈의 이름까지도 부처의 제자인 마하카샤빠의 이름을 따서 “카샤빠”라고 했습니다.
전체 3개의 카메라 종류가 광고에 나타나 있으나, 그 카메라들은 모두 그림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모델이었으며, 실제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관음”은 결코 실제로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요시다 씨가 10대의 “관음” 카메라를 완성했다고 증언했지만, 실제로 그 중 한대라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서기 1955년경에 발견된, “관음 모델 D”라고 불리는 카메라가 한 대 있었으나, 그것은 “라이카 모델 II”의 복제품이었고 요시다 씨가 만든 카메라가 아니었습니다. “관음 모델 D”의 제작자는 아직도 신비에 싸여있습니다. 아무튼 최초의 일본 고급 35mm 거리계 카메라의 제조는 독일이나 다른 서방 국가에 뒤지고 싶지 않았던 한 엔지니어의 자긍심과 꿈의 결과였습니다.
표준형 카메라 관음의 광고
요시다 씨가 이름지은카샤빠 렌즈
콴논 카메라
한사 캐논 (표준모델)
캐논의 첫 상용 카메라
“관음” 카메라를 상용화하기 위해 이루어진 집중적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는 아직 카메라의 중요 구성 부품인 렌즈와 거리계를 조달할 전망이 없었습니다. 번민의 숙고 끝에 연구소는 Nikkor의 렌즈를 이용하기 위해 니뽄 고까꾸 고교(일본 광학 산업 주식회사, 니콘 주식회사의 전신임) 로부터 협조를 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니뽄 고까꾸는 군사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최신의 제조 시스템을 갖춘 일본 최대의 광학 장비 제조 회사로 그 위치를 이미 확립하고 있었습니다. 한 때 니뽄 고까꾸의 회계사였던, 우찌다 사부로 씨의 형인 우찌다 료노수께 씨가 우찌다 사부로 씨를 실무 담당의 부사장인 호리 도요따로 씨에게 소개하였습니다. 그 당시 니뽄 고까꾸의 정책은 민간용 제품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었고, 호리 씨는 비 군사 제품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급 렌즈의 민간 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의 협조 요청 시기는 완벽했습니다. 양측의 이익을 인식한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와 니뽄 고까꾸는 니뽄 고까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사 캐논(Nikkor 50mm f/3.5 렌즈를 장착한 표준 모델)” 개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공동 개발하에 최초의 캐논 카메라가 1936년 2월에 시장에 소개되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실제 날짜가 1935년 10월이라고도 하지만) “한사 캐논”을 제조하기 위해, 니뽄 고까꾸는 렌즈, 렌즈 마운트, 뷰파인더의 광학 시스템과 거리계 메커니즘을 맡았고, 반면에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는 포컬플래인 셔터를 포함한 본체, 카메라 본체의 조립은 물론 거리계 커버 제조를 맡았습니다. 후에 “관음”이라는 이름은 재판을 위한 표준 또는 성경을 뜻하는 “캐논”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정밀을 좌우명으로 노력하는 정밀 산업 회사의 새로운 상표, “캐논”은 이 무렵 태어났습니다. “한사 캐논”이 출시되었을 때,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판매 채널이 없었으므로 오미야 샤신 요힌 주식회사(오미야 카메라 및 부품 판매상)와 독점 판매 및 상표 표시 계약을 사전에 맺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사”는 오미야의 상표였으며, 중세 유럽 도시의 상인 조합 중 한사 동맹에 그 어원을 두었습니다.
1936년 6월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는 메구로 구로 이전하고 당시 전국적으로 불고 있던 국수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그 이름을 일본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로 변경했습니다. 새로운 회사 이름이 공공 매체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아사히 카메라 1936년 8월호에 게재된 “한사 캐논” 카메라의 광고에서 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사가 아사히 카메라 1935년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한사 캐논 카메라... 캐논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라이카의 모방품이다. 콘택스의 영향도 약간은 엿볼 수 있으나, 주요 기능들을 라이카를 본떠 만들었다. 카메라 크기는 13.5cm x 6.8cm x 4.5cm이고 무게는 대략 650그램이다. 특수한 필름 매가진을 사용하고, 렌즈는 니뽄 고까꾸의 Nikkor 50mm f/3.5이다. 렌즈는 분리 가능하고, 후면에 있는 단추를 누름으로써 지정된 위치로 팝업되도록 설계되었다. 스냅 촬영 케이스를 포함하여 275엔이다.”
카메라 산업 일각에서 “한사 캐논”을 라이카의 일제 모방품이라고 불렀지만, 일본의 최초 고품질 35mm 거리계 카메라를 대표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비록 아직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제조 회사의 제품이었지만, 이 카메라는 카메라 산업의 내외부로 부터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CANON J II
메구로 구로 이사하면서, “한사 캐논”을 제조하고 종업원을 더 고용하면서 일본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는 당시 안정되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 상황은 달랐습니다. 생산량은 월 최대 10대에서 매주 겨우 한 대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이 회사가 일본 최초 35mm 거리계 카메라를 생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산 능력이 증대 되지 않아 결국 어려운 사업 여건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재정적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소는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37년 8월 10일 새 출발을 위해 연구소는 주식회사로 재편되었고 회사 이름은 정밀 광학 산업 주식회사로 변경되었습니다. 캐논은 오늘날 이 날을 회사의 공식 창립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회사 설립과 함께 사업도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사 캐논(표준)” 에 이어 1939년 2월에 회사는 “S 즉, 최신 모델” 및 “J 즉, 인기 모델”을 소개했으며, 1939년 2월에는 “NS 즉, 새로운 표준 모델”을 계속해서 소개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의 생산 시스템은 글자 그대로 수작업 형태였는데, 특히 마감 과정에서 그러했습니다. 예를 들면 개별 부품의 거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줄을 사용하거나, 카메라 몸체에 있는 원하지 않는 틈새를 메우는 일 등이었습니다.
“최신 모델” 소개 후 상표 이름에서 “한사”라는 말이 사라졌고, “캐논”이라는 이름만 사용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미야 샤신 요힌 주식회사와 관계 결별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오미야는 강도 높은 지원을 계속했는데 특히 판매 촉진 분야에서 그랬습니다. 봉급 근로자들의 일반 월급이 40-50엔이었을 때, 오미야 판매 직원들의 기본 월급은 약 20엔으로 높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판매 직원들은 “표준 모델” 한 대 판매당 5엔의 커미션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인기 모델”마저도 보통 봉급자들이 구매하기에는 너무 비쌌습니다. 카메라 소비자 시장은 크기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미야의 판매 사원들은 소비자 카메라 가게에 집중하기보다 구매력을 지닌 특정 개인을 타겟으로 하는 전략을 개발했습니다.
그들의 전략은 아주 효과적이어서 카메라 판매 직원들의 수입과 사기는 극적으로 증대되었습니다. 고급 35mm 카메라의 판매가 급속하게 증가하자, 오미야 샤신 요힌은 카메라 독점 판매 대리점으로서 라이카와 콘택스의 아성인 유럽 시장에 그 카메라를 소개할 환상적인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계획은 사진술 영국 저널(British Journal of Photography)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오미야 샤신 요힌
주식회사 에서 게재한 영문광고
캐논의 간접 X선 카메라의 초기 유형
정밀 광학 산업의 고급 35mm카메라는 “표준 모델”, “S 즉, 최신 모델”, “J 즉, 인기 모델”, 그리고 “NS 즉, 새로운 표준 모델” 등을 포함한 새로운 모델들의 시리즈에 의해 대표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진용으로 세이키 캐논(정밀 광학 산업의 캐논) 하면 일본의 고급 35mm 카메라를 지칭하는 명성을 확립했습니다.
회사의 최초 광학 엔지니어였던 후루까와 요시조 씨가 무비 카메라용 “50mm f/4.5 렌즈”, 16mm 영화 촬영기용 “45mm f/0.85 렌즈”와 같은 일부 렌즈를 시험용으로 개발했습니다. 그는 또한 “50mm f/3.5”, 비 거리계 결합”135mm f/4”, 그리고 간접 X선 카메라용 렌즈와 같은 렌즈 개발에 관여했습니다.
자체 개발 “50mm f/3.5” 및 “135mm f/4” 렌즈의 이름을 짓기 위한 회사 내 대회에서, 이러한 렌즈의 이름으로 “세레나”가 선정되었습니다. “Serenar” 란 말 중의 “serene”이란 단어는 ‘깨끗하고, 고요하고 안정된’을 의미하고 달 표면의 고요의 바다(the Sea of Serenity)에서 유래합니다.
1942년 우찌다 사부로 씨의 친구인 미타라이 다께시(1901-1984) 씨가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비록 그는 전문 산과 의사 였지만, 정밀 광학 산업 주식회사의 초창기 이래 우찌다 씨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 그는 매우 보기 드문 사람이었고 사장직을 맡기 전에는 정밀 광학 산업의 감사였습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그는 한 큰 병원의 산과 의사로 일한 후 도쿄의 메지로 구에서 미타라이 산부인과 병원을 개설했었습니다.
미타라이 사장이 주장한 회사의 전후 목표는 “라이카를 따라잡아 능가하자”였습니다. 이 목표의 정신은 모든 회사 종업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회사의 전후 복구를 위한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그는 노동(종업원), 자본(주주), 그리고 경영(회사)이 회사의 수익을 공유하기 위한 이른바 “산분 세추 시스템”(3분 시스템)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3가지 주요 지침을 주장했는데, 즉 “능력 우선의 승진”, “건강 최우선”, “가족 우선” 등으로 이들 모두 오늘날에도 적절한 지침이었고, 이러한 지침들이 회사 경영철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가족 우선”이라는 지침은 G-H-Q(go-home-quickly) 활동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연합군 GHQ, 즉 총사령부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빗댄 것이었습니다.
미타라이 사장이 실행한 다른 변화에는 회사 종업원의 사기 진작을 위한 보너스 시스템도 포함 되었습니다.
미타라이 다께시1901-1984
전후 복구 기간 중 출시된
첫 카메라인 J II(전후 인기 모델)
1945년 8월 15일 세계 제2차 대전은 일본 전체의 대도시들을 폐허로 만든 채 끝났습니다. 다행히 정밀 광학 산업 주식회사는 1944년 야마토 고까꾸 세이사꾸쇼(야마토 광학 제조 주식회사)와 합병에 의해 설립되었던 이타바시 공장의 일부 손실을 제외하고는 큰 손실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손실도 전쟁에 직접 관련된 피해가 아니라 전쟁 말기에 발생한 우발적 화재로 인한 손실이었습니다.
야마나시 현에 있는 다카라무라 공장과 야무라마치 공장(두 공장 모두 도쿄에서 철수한 시설이었음)은 물론 메구로 구 본사 공장도 큰 피해 없이 전쟁에서 살아 남아 소규모 운용으로 카메라를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이 공장도 모두 전쟁 직후 온 나라가 혼돈 상태에 빠졌을 때 주요 재료를 거의 구할 수가 없어 문을 닫았습니다.
이름이 윌리암 알. 고람이라는 보기 드문 미국 기술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1941년에 일본 시민이 되어 니싼 자동차 회사 설립에 상당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가춘도 고람이라는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1940년대에 캐논을 자주 방문하여 기계 조달과 기술적 혁신에 관한 중요한 제안과 권고를 했습니다. 그가 카메라 생산의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생산 목표를 사전 설정하는 이른바 “매일 계획생산”을 제안하여 회사가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고람은 또 제품 검사부를 공장장으로부터 독립시켜 사장 직속으로 두는 시스템을 제안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공장장의 변덕스러움과 상관없이 검사가 제대로 실시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미국 방식과 비슷한 합리적인 개선 계획 소개 이외에, 고람은 그의 따뜻하고 정렬적인 성품을 통하여 캐논의 현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1949년 10월 고람이 숨을 거두었을 때, 그의 침대 옆에는 미타라이 다케시 씨만이 있었습니다.
제 2차 대전 후 공장운영이
재개되었을 때의 최초 새 모델 S II
전후 정밀 광학 산업의 초석 Ⅱ B
정밀 광학 산업 운영 재개 후 1년이 되는 1946년 11월말까지 대략 560대의 “J II” 카메라를 생산했습니다. 연합군내에서 “국내 수출된” 카메라에 대한 수요가 점증한 덕택에 생산량이 착실하게 증가 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오랫동안 기다렸던 캐논의 신제품, “S II”가 출시되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뷰파인더와 연결된 거리계를 단일 창안에 결합했습니다. 이것은 라이카 카메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캐논의 독창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J II” 모델이 전쟁 전 “표준 모델”의 유물로 간주되는 반면, “S II” 카메라는 전후 정밀 광학 산업의 기초 구축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리라 기대되었습니다.
1949년 4월에 출시된 “II B”를 위해 또 다른 새로운 메커니즘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카메라의 특성은 3가지 모드의 광학 뷰파인더였습니다. 뷰파인더의 배율은 사용되는 렌즈에 따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 3가지 모드의 광학 뷰파인더는 교환 가능한 렌즈와 대등한, 캐논의 독창적 디자인이었고, 이 사양은 미래의 캐논 35mm 거리계 카메라로 이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후 정밀 광학 산업의 확고한 기초가 이 시기에서 확립되었습니다.
이 기간 중 정밀 광학 산업 주식회사 발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중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사건은 회사 이름을 캐논 카메라 주식회사로 변경한 일이었고, 둘째 사건은 본사 공장을 시모마루꼬로 이전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연합군 직원들 중에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제품의 상표가 카메라는 캐논, 렌즈는 세레나, 제품 제조회사는 정밀 광학 산업 등으로 혼란스럽다고 불평하는 애호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캐논 카메라를 찾아 메구로까지 왔고 그들이 찾고 있는 회사 이름이 정밀 광학 산업임을 기억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이와 같은 불평에 부응하고 회사 이름을 국제적으로 쉽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미타라이 씨는 1947년 9월 15일자로 회사 이름을 캐논 카메라 주식회사로 변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변경 후, 제조회사와 카메라 이름이 캐논으로 통합되었고, 세레나 렌즈 상표도 1953년 캐논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비록 그의 판매 계획이 미국에서 실현되지는 못했으나, 그의 미국 방문이 전혀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캐논은 세계 카메라 산업의 최신 동향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수집함은 물론, 가장 현대화된 시설을 지닌 새로운 방화 공장 건물의 필요성을 인식함으로써 상당한 이득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공장을 찾고 있던 회사는 6월 도쿄 오타 구 시모마루꼬에 위치한 전 후지 항공 기기 주식회사의 공장 부지를 매입하여 개축을 시작했습니다.
1951년 초, 캐논은 긴자에 위치한 본사 부서, 메구로 공장, 그리고 이타바시 공장의 재편을 시작했고, 점차 그들의 주요 기능을 새로운 시모마루꼬 본사 공장으로 이전했습니다. 시모마루꼬에 있는 새 공장은 다양한 작업장마다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여 아주 화려하고 현대적이었습니다. 시모마루꼬 공장의 완성으로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하는 현대화된 캐논사의 기초가 확립되었습니다.
캐논이 팔리기 전
후지 항공 기기 주시회사 공장
가우스 유형의 세레나
50MM F/1.8 렌즈 걸작품
비록 인기 카메라용 세레나 렌즈가 전후에 시장에 모습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원자재의 부족으로 첫 번째 전후 카메라, “J II”는 “세레나 50mm f/3.5”나 “Nikkor 50mm f/3.5”와 함께 공급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마침내 1947년에 “세레나 50mm f/2”의 개발이 완성되어 표준 렌즈로 사용되었습니다.
동시에 캐논의 최초 교환 가능 렌즈인 “세레나 135mm f/4”가 소개되었습니다.
캐논이 일본에서 세레나 렌즈의 전면적인 생산을 시작했음을 확인한 니뽄 고가꾸는 1948년에 Nikkor 렌즈 공급을 중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캐논의 고급 35mm 카메라를 자체 제작 렌즈와 함께 공급하는 시대의 시작이었습니다.
1951년에 소개된 “세레나 50mm f/1.8”은 후에 캐논 사업의 다각화에 지대하게 공헌하는 엔지니어, 히로시 이토 씨가 개발했습니다.
1951년에 소개된 “세레나 50mm f/1.8”은 후에 캐논 사업의 다각화에 지대하게 공헌하는 엔지니어, 히로시 이토 씨가 개발했습니다. 이 렌즈는 큰 구경에 자주 플레어(코마)를 일으키는 가우스 렌즈의 약점에 대해 정교한 해결책을 제공했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업적 덕분에 세레나 렌즈는 역사적 걸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비대칭 수차가 구경이 큰 가우스 렌즈의 취약점이었으므로, 그때까지 그 해결책은 전 세계 저명한 렌즈 디자이너들에게 기술적인 도전이었습니다. 그의 고유하고 독특한 분석을 이용하여 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토 씨가 개발한 광학적 기초 이론은 구경이 큰 광각 및 교환 가능 망원 렌즈의 개발을 가속화시켰습니다. 렌즈의 이름이 세레나에서 캐논으로 변경됨에 따라, 회사는 이토 씨의 이론을 기반으로 많은 걸작 렌즈를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1950년대 초반 캐논은 다양한 새로운 카메라를 계속적으로 출시했습니다. 아주 빠른 1/1,000초 셔터 속도를 가진 일본 최초의 모델, “III”카메라가 1951년 2월에 출시되었습니다. 그 후 두 달 뒤 4월에 전선 없이 카메라에 직접 연결되는 플래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래시 홈을 지닌 “IV”가 뒤를 이었습니다. “III”의 개선판인 “III A”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더 많은 카메라가 1951년의 새 제품 쇄도 속에 계속해서 소개되었습니다.
새 제품의 개발이 계속되는 동안 걸작품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IV Sb”였습니다. 1952년 2월에 출시된 “IV Sb”는 전자 플래시용 이른바 “X” 동기화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IV Sb”는 전자 플래시 동기화 기능을 지닌 세계 최초의 35mm 거리계 카메라였습니다. 특히 1954년 3월에 출시된 “IV Sb”의 개선 모델인 “IV Sb2”는 큰 의미를 지닌 모델이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이중 자동 기구 구조를 가진 완속 속도 조절기를 이용하여 1/15초의 셔터 속도를 제공했습니다. 1/15초의 속도의 도래로 세계 최초로 셔터 속도는 렌즈의 f/스톱 범위 및 노출 측정 표시처럼 두 개의 등비 수열이 될 수 있었습니다.
“IV Sb2” 카메라는 라이카와 같은 수준의 걸작품으로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최고의 클래식 모델로 높이 평가받은 IV Sb2
이즈음 캐논이 개발한 35mm 거리계 카메라는 세계 최고의 카메라인 라이카와 대등한 제품으로 여겨졌습니다.
“IV Sb2” 출시 바로 직전에 “라이카 M3”가 1954년 서독 콜로네에서 개최된 세계 제 4차 무역 박람회인 “포토키나”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라이카 M3”는 거리계 카메라에 대한 재래식 개발 접근 방식과 완전히 다른 개념을 기반으로 한 카메라였습니다. “라이카 M3”를 처음 보았던 캐논의 기술자들은 거리계의 정확성은 물론 뷰파인더의 밝기와 시정이 표현하는 카메라의 완벽한 수준에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캐논의 개선 모델 “IV Sb2”가 사용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캐논 엔지니어들은 “라이카 M3”의 출현과 더불어 카메라 세계는 대단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곧 회사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도록 이끌면서 카메라의 대 변화 시대를 선도했습니다.
밝은 뷰파인더와 정확한 거리계에 관한한 “라이카 M3”를 모방하기 어려웠으므로 캐논을 포함한 많은 카메라 제조 회사들은 그들의 개발 목표를 장래 세계 시장을 이끌어갈 카메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캐논을 포함한 일본 카메라 제조 회사들이 내린 결정은 일본 고유의 기술을 이용하여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 능력을 갖춘 일안 렌즈 반사식(SLR) 카메라에 집중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SLR 카메라야말로 망원 렌즈의 이용을 포함한 거리계 카메라의 모방을 극복할 수 있고 세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카메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956년 8월에 소개된 “VT” 카메라는 바닥 판(바르낙형)을 제거한 후에 필름 통을 바닥 안으로 삽입하는 재래식 필름 장착 방법을 버리고, 대신에 경첩식의 후면 덮개를 이용하고 감개 릴에 필름을 장착하는 간단한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VT”에서 “T”는 “trigger”를 뜻합니다. 왜냐하면 촬영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카메라가 카메라 바닥에 신속하게 감는 방아쇠를 지닌 필름 전진 구조를 장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Populaire, 인기)” 모델이 1959년 출시되었고, 1961년 3월에 “7”이, 1965년 4월에 “7S” 모델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노출 측정기를 내장하고 겉모양이 인상적인 “7” 시리즈는 사용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당시 35mm 거리계 카메라의 시대는 SLR의 시대에게 이미 길을 내주고 있었습니다. 1968년 9월 “7S”의 생산이 중단되자, “콴논”에서 출발한 캐논 35mm 카메라의 전통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캐논의 첫 8MM필름
무비 카메라인 사인8T
고품질 10-40MM F/1.4 줌 렌즈를
내장한 캐논 리플렉스 줌 8
캐논의 최초 무비 카메라인 “캐논 사인 8T”가 1956년 11월 소개되었습니다. 무비 카메라의 개발은 미타라이 사장이 카메라 시장 조사를 위해 미국과 유럽 관찰 여행 중 획득한 지식을 기반으로 1955년 시작되었습니다. 이 여행 중 미타라이 씨는 이스트만 코닥사의 8mm 필름 무비 카메라, “코닥 브라우니”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캐논은 해외 유수의 무비 카메라 제조 회사들의 제품은 물론 연합 점령군이 뒤에 남긴 일부 중고 무비 카메라를 획득하여, 반복 분해와 시험을 통해 필름 구동과 노출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특히 뷰파인더 기술에 강조를 두었습니다. 8mm 필름 무비 카메라는 뷰파인더에 나타나는 것과 똑같은 형식으로 피사체의 영상을 재생해야 하므로, 두세 개의 올바른 각도의 프리즘이 “IV Bb”의 다양한 확대 뷰파인더 메커니즘과 결합되는 이른바 “포로 프리즘(Porro prism)” 시스템을 이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혁신과 더불어 캐논은 밝고 깨끗하고 실 영상을 생성하는 혁신적인 뷰파인더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다른 한편, 뷰파인더의 개발과 동시에 캐논 렌즈부는 줌 렌즈의 개선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캐논의 줌 렌즈 역사는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캐논은 고성능 8mm 필름 무비 카메라 줌 렌즈인, 4 확대율을 가진 “10-40mm f/1.8”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으나, 커다란 크기 때문에 출시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구경이 큰 줌 렌즈의 성공적인 개발에 힘입어 캐논은 짧은 개발 기간에도 불구하고 “캐논 리플렉스 줌 8”을 저렴한 가격으로 1954년 10월에 출시했습니다. “10-40mm f/1.8”의 구경을 확대하여 “10-40mm f/1.4”를 만들고 이것을 “캐논 사인 8T”에 맞춤으로써 이렇게 신속하고 저렴한 비용의 개발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캐논의 첫 35mm SLR 카메라, “캐논플렉스” 가 1959년 5월에 소개되었습니다. 같은 해 6월에 니콘 사가 “니콘 F”를 출시했습니다. 비록 SLR 카메라의 원리는 일반 카메라만큼 오래 전에 알려졌지만, 거리계 카메라만큼 가볍고 사용하기 쉬운 카메라 제조 분야의 기술적인 문제들이 수년 동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오각 프리즘, 신속 반사 거울, 그리고 자동 구경 제어 메커니즘을 포함한 여러 기술 혁신과 더불어, 모든 유형의 교환 가능 렌즈 이용이 가능한 실용적인 35mm SLR 카메라의 시대가 마침내 도래했습니다. 캐논은 SLR 카메라용 R 시리즈 렌즈를 개발했습니다. R 시리즈를 이용하는 카메라는 R 시리즈 카메라라고 불렸습니다.
“캐논플렉스”의 뒤를 이어, 다른 어느 카메라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빠른 1/2,000초의 최고 셔터 속도를 가진 “R2000”이 1960년에 소개되었습니다. “R2000”은 1962년에 출시된 “캐논플렉스 RM”으로 발전했습니다.
“캐논플렉스 RM”은 최초로 내장 노출 계기를 장착하고 있었고, 방아쇠 대신에 오목한 곳에 레버를 가지고 있는 필름 전진 시스템을 채택했습니다. 그 레버로 인해 작동이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캐논의 첫 SLR 카메라
캐논플렉스
캐논플렉스 SLR카메라와 함께
동시에 개발된 R 시리즈 렌즈들
교환 가능 오각 프리즘 뷰파인더, 완전 자동화된 구경 제어 시스템, 그리고 외부 연결 셀레니움 측정 기기를 포함한 여러 새로운 기술 혁신이 “캐논플렉스”에 적용되었습니다. 밝은 R 시리즈 렌즈에는 초점 거리가 35mm부터 135mm에 이르는 렌즈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슈퍼 캐노매틱” 이라고 불리는 완전히 자동화된 조리개 제어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본체에 연결된 이 조리개 제어 메커니즘은 카메라 본체를 렌즈와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FL 및 FD시리즈 렌즈의 개발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캐논플렉스” 렌즈 장착에는 재래식 나사 시스템 대신 “breach lock mount”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이 방법은 카메라 본체와 렌즈 사이의 직접 마찰로 생기는 장착 마모를 방지해줌으로써 카메라의 광학적 정확성을 증대시켰습니다. R 시리즈 계통에는 역 초점 광각 렌즈, “R35 f/2.5”, 밝은 표준 렌즈, “R58 f/1.2”, 그리고 초 망원 렌즈, “R1000 f/11”과 같은 약 16가지 다양한 렌즈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렌즈들 중에는 캐논의 최초 일반 카메라용 줌 렌즈였던 “R55-135mm f/3.5”가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SLR 카메라 시대의 여명기 중 R 시리즈 렌즈가 우수한 특성들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제조 원가와 미래의 기술 개발에 관한 대폭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FL 시리즈가 개발되었습니다. 초 망원 렌즈에 사용된 형석은 파생적인 색수차를 줄이는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형석 결정은 너무 작아서 실제 적용이 불가능했습니다. 캐논은 인조 형석 결정의 크기를 늘림으로써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그 후 1969년 인조 형석 결정을 사용한 "FL300mm f/5.6" 및"FL500mm f/5.6" 두 렌즈를 소개했습니다.
1960년대 착실한 성장을 보이고 있던 일본 필름 산업은 필름 표준에 있어 갑작스러운 변화에 직면하였습니다. 새로운 필름 표준은 이스트만 코닥사의 인스터매틱 126 및 서독 아그파의 래피드 시스템이었습니다. 캐논은 이 두 표준에 맞추어 “캐노매틱 C 30”과 “데미 래피드”를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필름들의 장착 시스템이 SLR 카메라와 호환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필름 표준에 맞는 특수 카메라의 개발은 단지 렌즈-셔터 카메라로만 제한되었습니다. 캐논은 일반 35mm 필름 장착용, 자사 고유의 QL(quick loading, 신속 장착) 시스템을 개발하여 “FT QL” SLR 카메라에서 소개했습니다.
1967년 회사 30주년을 시작하며, 미타라이 사장은 다음과 같은 신년사를 발표했습니다. “금년에 우리 회사 번영의 기초를 닦기 위해, 우리는 오른손에 카메라를, 왼손에는 사무기기와 특수 광학 장비를 잡아야 합니다. 동시에 상당한 정도로 수출을 증대시켜야 합니다.” 이 말은 그 이후부터 회사의 슬로건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1960년에 캐논은 장기 사업 계획 아래 전자 계산기와 복사기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사무기기 및 특수 광학 장비의 판매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캐논이 카메라 제조 회사에 불과하다는 이미지를 불식할 때가 도래했습니다. 카메라와 사무기기를 포함한 영상 및 정보 처리 기기 종합 제조 회사로서의 커다란 도약을 성취하기 위해, 1969년 3월 1일 회사 이름을 캐논 주식회사로 변경했습니다.
당시 광고에 사용되었던 표어는 “빛과 전자, 미래로 연결”이었습니다. 당시 광고의 사본은 캐논이 장래에 걸어야 할 길을 시사하면서 캐논이 과거에 걸었던 길을 가리켰고, 캐논이 새로운 세계에 진입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피력한 것이었습니다.
F-1 시스템- 매우 인상적인 모습
뮌헨 올림픽에서의 평행봉 묘기
달인의 공중제비를 포착한 F-1
후꾸시마 공장에서 가진
백만 번째 FTb 출시 기념식
캐논 35mm SLR 카메라의 역사는 “캐논플렉스”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다양한 기술이 SLR 카메라에 구현되었으나, 1964년 가을 무렵 전문 사진 작가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고급 SLR 카메라 생산에 착수해 달라는 요청이 회사 내외에서 점점 증가했습니다. 5년의 개발 노력 끝에, 카메라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발자국을 남긴 “F-1”이 1971년 3월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F-1 개발을 위해 캐논은 상당한 인적, 재정적 그리고 기술 자원을 투자했다고 전해졌습니다. F-1 을 개발하는데 쏟은 시간과 에너지는 10개 이상의 재래식 카메라 개발에 필요한 양과 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카메라는 본체와 몇 가지 중요한 부품이 한 세트로 먼저 출시된 후, 뒤이어 필요할 때마다 추가 부품들이 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F-1은 전문 사진 작가들이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이전 모델에서 도입되었던 일부 부품을 포함한 전체 시스템 부품들과 함께 출시되었습니다.
렌즈와 필터를 포함하여 180개가 넘는 부품이 “F-1”용으로 이용 가능했다고 합니다.
F-1의 개발 배경에는 전문 사진 작가 전용 카메라를 디자인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많은 수의 부품과 기능 이외에 이 카메라는 전문 사진 작가들이 자주 겪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잘 견디고, 신뢰성이 높으며, 성능을 잘 발휘하는 제품으로 입증되었습니다. 10만 장의 사진을 찍고, 모든 시스템 부품을 조정 없이 즉시 사용 할 수 있으며, 섭씨 -30에서 +60도에 이르는 온도에서 성능을 발휘할 만큼 내구성이 충분했습니다. 한 영업 사원은 이 카메라의 내구성을 증명하기 위해 카메라 위에 올라섰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 신뢰성 덕분에 “F-1” 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얼 하계 올림픽과 1980년 미국 래이크 플래시드 동계 올림픽 공식 35mm 카메라로 지정되었습니다.
F-1카메라를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1972년 캐논은 초당 9프레임의 촬영 속도를 지닌 “고속 모터 구동 카메라”를 생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해 서독에서 개최된 1972 뮌헨 올림픽에서 보여준 우수한 성능 때문에, 이 카메라는 국내 및 해외 언론 사이에 높은 명성을 획득했습니다.
신뢰성이 높은 카메라에 대한 전문 사진 작가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F-1은 본체 자체를 셔터와 노출 제어 시스템을 포함한 암실 상자로 이용하고 부속품들의 유연한 결합을 통하여 추가 기능을 제공한다는 개념 아래 디자인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환 가능 뷰파인더, 연장 촬영 용량에 필요한 필름통, 그리고 시간대별 타이머가 있는 모터 구동 장치와 같은 다양한 부속품들이 F-1용으로 이용 가능했습니다.
F-1 몸체와 조화를 이루도록 이러한 부속품들은 기본적으로 검정색이었고, 선형 모양이었으며, 전문적 이용에 적합하다는 카메라의 이미지를 강조하도록 디자인 되었습니다. 많은 부속물이 딸린 F-1시스템은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사용자들이 “중무장 탱크”란 별명을 붙인 F-1은 그 내구성과 신뢰성에서 만큼은 천하무적이었습니다.
한편 고품질 대량 시장 모델인 “FTb” 카메라가 “F-1”과 동시에 출시되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F-1”과 같은 기본 기능을 가졌고, 최대 조리개 TTL 측광과 핫슈를 지닌, 무선 플래시 동기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동일한 새로운 FD 시리즈 렌즈를 사용했습니다. 우수한 기술적 접근 방식과 성능 덕분에 “FTb”의 생산은 그 출시 후 3년 내에 백만 대에 이르렀고 캐논의 주요 제품이 되었습니다.
FD 렌즈의 개발은 단지 FL 시리즈의 재생이 아니라, 장차 자동 노출(AE) 제어 시스템 고려를 기반으로 했고, 다가오는 광학/전자 시대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단일 자동 조리개 핀을 장착한 FL 시리즈와는 달리, FD 시리즈 렌즈는 전 구경 측광을 가능케 하는 렌즈의 최대 구경 투과용 신호 핀이 그 두드러진 특색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양은 후에 전자 카메라 시대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다가오는 10년 동안 상위 자리를 차지할 고성능 렌즈의 개발”
이것이 바로 FD 시리즈 렌즈 개발의 목표였습니다. 광학 시스템의 개발에 관해, 세레나 렌즈 개발에 관여했던 히토시 이토와 그의 부서 직원들이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출시에 이르기까지 기본 정책과 세부 계획을 아래와 같이 수립했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기술적인 기준에 특히 역점을 두어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1년 3월 총 14종의 FD 렌즈 신제품을 출시했습니다. FD 시리즈의 표준으로 “FD50mm f/S.S.C”는 사진용으로 디자인되었음에도 다양한 광학 계측 장비에 사용되었습니다. FD300mm f/2.8 S.S.C 렌즈는 매우 밝은 망원 렌즈 전체의 선구자로 인상적인 데뷔를 했습니다.
제3세대 FD 시리즈 렌즈
카메라 기술의 새로운 국면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한 캐논은 자동 노출(AE) SLR 카메라의 연구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F-1” 개발과 동시에 캐논은 셔터 속도 우선 AE, 조리개 우선 AE, 그리고 프로그램 우선 AE의 최고 버전을 생산하기 위해 반복적인 시행 착오 접근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4가지나 되는 시리즈의 원형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폭넓은 연구는 캐논이 1973년 11월에 자신의 최초 AE SLR 카메라, “EF”를 출시했을 때 그 결실을 보았습니다. 경쟁사들이 같은 시기에 출시한 대부분의 AE 카메라는 조리개 우선 AE를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EF”는 사진 작가가 셔터를 개방할 때, 카메라의 흔들림을 최소화하기에 충분히 빠른 셔터 속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셔터 속도 우선 AE를 사용했습니다.
35mm 포컬플래인 셔터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35mm렌즈-카메라 또한 대단한 발전을 보였습니다. 1969년에 출시되었던 “신 캐노넷”의 일련의 부산물이 1970년대에 소개 되었습니다. 특히 “캐노넷 G-III 17”은 소형 크기 및 사용하기 쉬운 특성 때문에 인기를 얻어 10년만의 판매 기록을 세웠습니다. 총 판매 대수가 약 120만대에 이르렀습니다.
그 당시 캐논은 사진상에 날짜를 인쇄하는 특성을 지닌 카메라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캐노데이트 E 라는 이름의 첫 번째 카메라가 1970년 12월에 출시되었습니다. 이 카메라 후에 “캐노데이트 E-N”이 그 뒤를 이었고, 1974년 11월에 경량 소형의 “데이트매틱” 카메라가 그것을 대체했습니다. 그 바디는 카메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카메라의 개발을 통해 획득된 프로세싱 기술은 후에 SLR 카메라 바디 및 렌즈에 응용되었습니다.
12년 이상 생산되었던 장기간 히트모델
오토 줌 318M
8mm 필름 무비 카메라 영역에서는 보다 긴 줌 렌즈를 향하는 추세가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에 “오토 줌(AZ) 2018 Super 8”이 서독 콜로네에서 개최된 “포토키나” 무역 박람회에 전시되어 당시에는 놀랄 만큼 높은 확대 배율이었던 20X 줌 렌즈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생산 원가가 엄청나 상업적으로 실용적이지 못한 제품으로 입증되었습니다.
1972년 3월에 출시된“AZ814E(Electronic)”와, 1973년 3월에 출시된 “AZ1014E”는 “AZ2018 Super 8”의 개발에서 얻은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채택했습니다. 대량 시장 모델 중 “AZ318M”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모델이었습니다.
이 모델은 근접 촬영 사진술을 위해 새로 디자인된 3X 줌 광역 매크로 렌즈와 함께 1972년에 출시되었고 35mm SLR 카메라 이전에 전자적으로 제어되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2년 7개월 동안 판매가 호조를 보여 450,000대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립싱크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시네프로젝터 T-1
8mm 무비 카메라 개발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음향을 어떻게 삽입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1972년 4월에 출시된 “시네프로젝터 T-1”은 이른바 “립 싱크” 기능이라는 영상과 음성의 완벽한 동기화를 성취했습니다. 이 영사기는 촬영 중 오디오 테이프 상에 있는 음성과 동기화 된, 카메라의 셔터로부터 오는 신호를 기록하고, 영사기의 필름 진행 모터를 전자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재생 중 테이프 녹음기로부터 오는 신호를 이용하여, 조금도 추적 오류 없이 한 프레임에 대한 정확한 립싱크를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1973년 이스트만 코닥사가 “엑타사운드”라고 불리는 자기 띠를 가진 Super 8필름과, 엑타사운드 필름상에 사운드 트랙을 기록할 수 있는 8mm 필름 무비 카메라를 소개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치논 산업이 이스트만 코닥보다 약간 앞서 음성 녹화 성능을 지닌 8mm 필름 무비 카메라를 출시했습니다. 8mm 필름 무비 카메라의 음성 시대가 시작된 셈 이었습니다.
캐논은 음성 무비 카메라 시장에 진출하자 음성 기록 성능용으로 대형 크기의 카메라를 피하면서 종래의 기능을 희생시키지 않고 음성 품질을 개선하는 정책을 수립했습니다.
AE-1 신문 광고
1973년 첫 오일 쇼크가 일어난 때에, 일본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힘든 상황이었고, 캐논 직원의 급여는 2년 연속 35%이상 증가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그 즈음에 완전 자동 카메라를 개발하자는 목소리가 회사 내부에서 제기되고 1974년 1월, 약 100여명의 엔지니어들이 “신제품 X 개발 플랜”이름 아래 신제품 개발을 위해 동원되었습니다.
1976년 4월, 결국 캐논은 "AE-1"카메라라는 새로운 모델 X를 발표했습니다. "AE-1"의 개발 컨셉은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제품이었습니다. 캐논은 초정밀 가공과 자동 조립 및 기계를 위한 제조 기술과 카메라 가전, 정밀 기계 그리고 광학 및 컴퓨터를 활용한 설계를 위한 앞선 디자인 기술을 성공적으로 결합시켰습니다. "AE-1"는 셔터 속도 우선 TTL 측광 방식 및 중앙 처리 장치 (CPU)를 탑재한 세계 최초 35mm AE SLR 카메라였습니다. 그리고 액세서리 "파워 와인더 A"를 통해 2연사가 가능해, "연속 촬영 SLR"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또 "AE-1"는 전용 스피드 라이트를 통해 자동 플래시 노출 제어도 가능해 다양하고 획기적인 자동화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캐논이 이미 “EF”를 소개했지만, 대량 시장용 35mm AE SLR 카메라인, TTL 수동 측광기를 가진 FTb가 아직까지 대량 생산 모델의 주력품이었습니다. 캐논은 최고 35mm SLR 카메라 제조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AE-1의 출현으로 35mm SLR 카메라의 개발 방향을 전환하고자 하는 충동이 카메라 산업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AE는 “자동 노출 제어”를 줄인 말이지만, AE-1의 이름은 “전자 SLR 카메라에 의한 전체 자동 시스템” 중 최고급품을 대표하는 카메라를 생산하려는 사의 목표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연속 촬영 SLR”이라는 표어는 전 세계를 휩쓸었고, 일반 대중에게까지 침투했습니다. 캐논은 전국 네트워크상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테니스와 골프 선수들을 등장시켜 TV 상업 방송을 주도했습니다. 이것은 일본 카메라 제조 회사로는 처음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카메라가 출시되자, 이러한 광고 전략은 기록적인 판매와 더불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다섯 가지 AE 모드를 가진 A-1은 1978년 4월에 출시되었고, 당시 AE-1은 계속해서 압도적인 히트 상품이었습니다. A-1은 최첨단 전자 메커니즘과 다중 기능으로 카메라 산업계 내외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A-1의 다섯 가지 모드는 셔터 속도 우선 AE, 조리개 우선 AE, 프로그램 AE, 스톱 다운 AE, 그리고 스피드라이트 AE 등이었습니다. 셔터 속도와 조리개는 카메라에 있는 다이얼로 쉽게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운용성을 지닌 A-1은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컴퓨터를 내장했습니다.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완전 자동 시스템은 측광, 표시되는 정보양의 현격한 증가 등을 포함하여 전체 사진 과정에 관한 정밀 제어와 여러 부품을 단일 구성품으로 통합함으로써 얻는 저가 생산을 보장했습니다.
완벽한 디지털 제어로 실현된 다중 기능을 가진 “A-1” 은 전통적인 카메라 팬들뿐 아니라, 기계를 좋아하는 중고등학생들과 같은 젊은 사용자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SLR 카메라의 자동 노출 제어(AE) 시스템이 발전함에 따라, FD 렌즈도 개선되었습니다. FD 시리즈 렌즈는 우수한 영상 재생 및 최상의 색상 균형의 실현은 물론, 후면 초점과 비구면 렌즈 요소와 같은 특징 때문에 사용자들로부터 대단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형화 및 장착 시스템에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더 있었습니다.
특히 쉽고 빠른 장착 시스템의 개발은 신 FD 렌즈 개발팀에게 도전적 과업이었습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렌즈는 외부 브레치 록 링으로 단단히 죄어졌으나, 자주 교환 가능 렌즈를 사용하는, 점증하는 전문 및 수준급 아마추어 사진 작가들은 그러한 장착 시스템에 불만을 표시하고, 완벽한 잠금을 구현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캐논은 이전 카메라들과 호환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장착 및 잠금 시스템을 개발하여 FD 렌즈에 투입했습니다. 그 제품 표시는 FD 렌즈와 마찬가지지만, 재래식 렌즈와 구별하기 위해 “신”이란 말을 추가했습니다.
FD 시리즈를 개선한 신 FD 시리즈
F-1 시스템을 구성하는 부품과 전자기술과
함께 전시된 신 F-1
캐논이 F-1의 기본 사양과 기능을 10년 동안 변경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1970년대 내내 캐논의 주력 35mm SLR 카메라로 유지했었던 F-1은 1970년대 말에 제품 경신의 때를 맞이했습니다.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중 기능을 가진 자동화 카메라 추세와 더불어 캐논이 모델 개조 작업에 착수할 적절한 시기였습니다. F-1 소개 후 10년 동안 캐논은 전문 사진 작가들과, 다른 F-1 사용자들로부터 피드백을 수집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나게 다양한 의견, 소망, 그리고 응용이 있었습니다.
차세대 카메라를 대표하는 새로운 모델을 생산하기 위해, 이와 같은 소중한 입력 피드백은 적절한 심사 숙고 과정을 거쳐 정밀 광학, 정밀 기계학, 전기 및 전자 공학, 그리고 신체 광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최신 기술과 결합되었습니다. 차세대 고품질 주력제품 35mm SLR 카메라, “신 F-1”이 1981년 9월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신 F-1 개발의 배경이 되었던 철학 또는 개념은, F-1의 경우에서처럼, 고품질과 정밀성에 의해 두드러진 안전성과 신뢰성에 가장 큰 강조를 두었습니다. F-1시스템의 뒤를 이은 신 F-1시스템은 훨씬 더 진보된 기능을 가졌습니다. AE 모드는 필요에 따라 그리고 카메라 운용이 전지 전원 없이도 가능하도록 해주는 전자 및 기계적 메커니즘을 결합한 혼합 셔터에 따라, 셔터 속도 우선 및 조리개 우선으로부터 선택 가능했습니다. 외부 디자인 또한 F-1을 기반으로 했고 첨단 특성을 지닌 최고급 카메라로서의 품위를 유지했습니다.
이 카메라는 A 시리즈 카메라에 아주 권장되었던 오른손의 편의를 위한 손잡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용의주도함이 휴대성과 촬영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신 F-1”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셔터 다이얼, 셔터 버튼 및 필름 진행 레버와 같은 작동 부품의 모양과 위치를 심사 숙고하여 정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F-1사용자들이 신 F-1을 친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F-1과 유사하도록 했습니다. 비록 F-1용 부속품과의 호환성이 최신 기능을 채용할 필요성 때문에 희생되기는 했지만, 다섯 개의 교환 가능 뷰파인더, 32개의 초점 스크린, 초당 5프레임 속도의 모터 드라이브, 그리고 100프레임 연속 촬영을 가능케 해주는 필름실과 같은 중요한 품질 향상이 성취되었습니다.
전문가 전용으로 디자인된 “신 F-1”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신뢰성을 보장한다는 개발 목표를 성취하여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개최된 1984년 하계 올림픽 공식 35mm 카메라로 지정되었습니다. 신 F-1의 도움으로 전문 사진 작가들은 세계 도처의 큰 행사에서 많은 귀중한 순간들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1984년 캐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당 14프레임 연속 촬영 속도를 가진 고속 모터 드라이브가 특징인 신 F-1기반 모델을 완성했습니다. 이 “신 F-1 고속 모터 드라이브 카메라”는 스포츠와 기타 특수 영역에 있는 전문 사진 작가용으로 제한된 판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제 2차 오일 쇼크 기간 중 카메라의 수요는 줄어들었고, 점증하는 수의 소비자들이 SLR보 다 값이 저렴한 렌즈-셔터 카메라를 더 선호했습니다. 그러한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캐논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생활 방식과 취향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AE 카메라의 신 개념을 기반으로 A 시리즈를 대표 할 T-시리즈 SLR 카메라를 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캐논은 1983년 3월에 “T50”, 1984년 4월에 “T70”, 그리고 1985년 4월에 “T80”을 포함하여 계속적으로 T-시리즈 카메라를 출시했습니다.
T80은 어느 사용자든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도록 그림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T-시리즈 카메라는 쉽고 간단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자동화된 메커니즘을 철저히 투입했습니다. 1986년 2월 캐논은 고급 아마추어 및 전문 사진 작가들을 목표로 T90을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자동화되고 컴퓨터화된 카메라가 가장 적절한 기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용자들이 어떤 유형의 카메라를 원할까? 이와 같이 변화하는 환경에 응답하여 T-시리즈 카메라가 탄생했습니다.
촬영 과정을 단순화한 T-80의 사진
능동적 AF시스템을 사용한 AF35M 광고
자동 초점(AF) 카메라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에 자극을 받은 캐논은 자신의 최초 AF 렌즈-셔터 카메라, AF35M(오토보이)을 개발했습니다. 코니시로꾸 고교(현재의 코니카)가 “코니카 C35AF”라고 이름 지은 세계 최초의 AF 카메라를 1977년에 개발했습니다. 그 이후 모든 주요 카메라 제조 회사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이러한 카메라의 AF 메커니즘은 미국 하니웰 사가 개발한 Visitronic 이라 불리는 자동 초점 소자를 이용했습니다. 그것은 피사체의 두 방식(영상)을 전자적으로 감지하여 삼각 측량으로 그 거리를 계산하는 수동식 AF 시스템이었습니다.
캐논은 저 조명 또는 저 대비 피사체에게는 이 시스템이 부적절했으므로 이러한 AF 모듈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독창적인 AF 시스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캐논은 어두운 지역에서도 초점 맞춤을 가능하게 해주는 적외선 능동 AF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C35AF 출시 2년 후, 1979년 11월에 캐논은 적외선 능동 AF 시스템을 장착한 렌즈-셔터 카메라, AF35M을 출시했습니다.
“AF35M(오토보이)”에 조합된 능동적 AF 시스템은 근접 적외선 다이오드를 이용한 삼각 측량을 기초로 합니다. 수동적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이동식 거리계 미러를 이용하는 대신, 발광 다이오드가 원호를 통해 흔들리도록 했습니다. 능동적 AF 시스템은 피사체의 밝기 및 명암 대조와 상관없이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초점을 맞추고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초점을 맞추기 위해 두 광학 영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므로, 초점 맞춤이 가까운 거리에서도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과, 자동 필름 감기 및 되감기, 프로그램 AE, 그리고 자동 플래시 AE, 등과 같은 기타 편리한 기능 때문에 “오토보이”는 곧 완전 자동 AF 소형 카메라의 속명이 되었습니다.
전자 영상 또는 비디오 캠코더 사업은 미래의 프로젝트로 초안이 확립되었습니다. 많은 전기 제품 제조 회사들이 이 사업에 진출함에 따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었지만, 고품질 영상 카메라 전문 회사인 캐논은 영상 기술에 관한 한, 어떤 새로운 사업에서도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 일치가 회사 내에 있었고, 이렇게 하여 광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개발 프로젝트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제조 회사들이 1981년 8mm 비디오 형식의 표준화에 착수하게 됨에 따라 캐논은 전면적으로 비디오 캠코더 사업에 진출했고, 이는 시작부터 8mm 비디오 표준에 집중했던 결과였습니다. 1983년 회사 개혁 시행에 따라 전자 영상부가 카메라부로 부터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캐논은 이미 풍부한 실적을 자랑하는 가전 제품 회사들과 경쟁하면서 비디오 캠코더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1985년 세계 최초 통합 8mm 비디오 캠코더, “캐노비전 8VM- E1”을 출시했습니다. 이 캠코더는 대형 f/1.2 조리개를 지닌 소형 고성능 6X 파워 줌 렌즈를 장착했습니다. 경량 소형 몸체와 고정 영상 재생 및 녹음/재생과 같은 다양한 최신 기술로, 이 캠코더는 그 해의 우수 디자인 상을 수상했습니다.
8mm 필름 무비 카메라용 음성 메커니즘의 발전과 더불어, 캐논은 자신의 최초 음성 8mm 필름 무비 카메라, 514XL-S를 1976년 9월에, 뒤 이어 음성 기능을 가진 영사기인 PS-1000을 1977년 3월에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주요 추세는 8mm 필름 무비 카메라에서 비디오 캠코더로 전환되는 중이었습니다. 1982년 9월 캐논은 “AF310XL”과, 음성을 기능을 가진 그것의 대체 버전, AF310XL-S를 출시했습니다. 양 모델의 생산이 1985년에 중단됨으로써, 캐논 시네 8T와 함께 시작했던 8mm 필름 무비 카메라의 30년 역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우수 디자인 상을 수상한
캐노비전 8VM-E1
세계 최초 상용 자기 기록
스틸카메라 RC-701
컬러 비디오 프린터
RP 601
스틸비디오 트랜스시버 RT-971
약 160년의 역사를 지닌 은빛 할로겐 화합물 기반 카메라가 그 당시 지배적이었지만, 전자 기술 기반 자기 기록 스틸 카메라의 개발이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자기 기록 스틸 카메라는 재래식 필름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필름 현상 과정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 카메라는 쉬운 영상 처리 이외에 영상을 쉽게 전송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캐논이 자기 기록 기술의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카메라 제조 회사가 따라야 할 엄격한 영상 품질 표준이 만족스럽지 못했으므로 캐논은 그 기술의 상업화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소니사가 1981년에 자기 기록 시스템을 장착한 스틸 카메라, “마비카”를 출시했습니다. 필름 없는 스틸 카메라 시대를 예상하여 캐논은 무필름 컬러 스틸 카메라 개발을 위해 1981년 10월 전담 팀을 구성했습니다. 자기 기록 스틸 카메라 개발 과정 중,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게임은 영상 전송을 실험적으로 이용 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일본 신문사, “요미우리 신문”의 요청으로 캐논은 영상 전송 실험에 관여했습니다. 전 과정 준비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10개월 뿐이었습니다. 현장 시험 실시, 사진가 훈련, 수출 서류의 준비, 그리고 일본에서 필요한 기타 절차를 밟은 후, 전자 변환기 및 재생 기계를 개발 및 디자인하고 원형을 완성하기 위한 시간은 5개월 밖에 남지 않았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스케줄이 너무 짧았습니다. 남자 마라톤 대회 방영 중, 전자 송신기에 부착된 자동 전화가 작동하지 않아 공중 전화를 이용해 정보를 전송해야 했었습니다. 여하튼 그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그 실험으로부터 자기 기록 스틸 카메라에 대한 귀중한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게임 시험에서 얻은 자료와 경험을 기반으로, 캐논은 자기 기록 스틸 카메라 생산에 착수했습니다. 스틸 비디오(SV)카메라, “RC-701”과, 일군의 시스템 구성품이 1986년 소개되었습니다. 소니사가 “마비카”를 출시한 이래, 여러 전자 제품 및 카메라 제조 회사들은 원형을 개발했으나, 캐논의 “RC-701”이 세계 최초 상용화된 제품이었습니다.자기 기록 스틸 카메라는 아날로그 녹음 시스템을 사용했으나, SV 카메라의 연구 및 개발을 통하여 획득한 노하우와 기술은 오늘날 디지털 카메라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EOS 650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일본 카메라 쇼의 캐논 전시대
EOS부품 전시 모습
1985년 2월, T80 카메라 출시 2개월 전 카메라 산업계를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놀타사가 진정한 AF 35mm SLR 카메라, 미놀타 a-7000을 소개했고, 뒤이어 9월에 “미놀타 a-9000”을 소개했으며, 이어서 니콘사도 1986년 4월에 “니콘 F-501”을 출시했습니다. 이러한 SLR 카메라는 출시 즉시 히트 상품이 되었으며, 국내뿐 아니라 북미 시장에서도 이 카메라에 대한 수요가 높았습니다. 35mm SLR 카메라가 하룻밤 사이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F501이 출시되었던 1986년 4월말에 자동 초점 SLR 카메라는 국내 SLR 카메라 시장 점유율의 50%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캐논도 자동 초점 SLR, T80을 출시했으나, T80의 초점 성능이 미놀타 a-7000과 니콘 F-501에 비해 훨씬 뒤졌습니다. 그 후 1985년 3월 캐논은 캐논 이름에 걸맞은 고도의 정밀 AF SLR 모델을, 캐논의 50주년 기념일인 1987년 3월 1일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개발 프로젝트를 “EOS(Electro Optical System, 전자 광학 시스템)”라고 불렀습니다. “E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벽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여, 신세대 SLR 카메라에 매우 걸맞은 이름이었습니다.
EOS는 3가지 주요 지침 아래 개발되었습니다. 즉, AF 메커니즘 소개로 인한 가격 인상 없음, 300mm f/2.8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손으로 잡고 실내 스포츠를 촬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경량 디자인, 그리고 노출 감도와 대등한 자동 초점 감도 등이 그 지침들이었습니다. 고품질 카메라를 완성하기 위해, 캐논은 2년간의 연구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이러한 지침들은 미래 향상 잠재력을 지닌 융통성 있는 시스템을 강조하기 위한 캐논의 개념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오늘날에도 캐논 카메라 개발 원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유망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EOS 개발 프로젝트 노력은 1987년 3월 예정대로 “EOS 650” 소개와 더불어 결실을 맺었습니다. “EOS 650”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혁신적이고 독특한 캐논의 기술이 이용되었는데, 그 중에는 고도로 예민한 초점 맞춤 감지기, BASIS(Base-Stored Image Sensor, 기초 저장 영상 감지기), 고 정밀 모터,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USM(Ultrasonic Motor, 초음파 모터), 그리고 초고속 계산 및 제어를 지원하는 슈퍼 마이크로컴퓨터의 소개 등이 그것들이었습니다.
출시 1개월 전 “EOS 650”은 도쿄에 있는 일본 카메라 쇼에 전시되어 격찬을 받았습니다. 시장 진출 2개월 뒤인 5월에 “EOS 650”은 일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최고의 시장 점유율을 장악했습니다. 나아가 “EOS”는 유럽 카메라 ‘87/88 상은 물론 같은 해에 일본 카메라 그랑프리를 획득했습니다.
1987년 5월 “EOS 650”의 향상 모델인 “EOS 620”이 소개되었습니다. 1989년에는 “EOS 630”이 출시되었고, EOS 계통의 주력 제품인 “EOS-1”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비록 캐논이 자동 초점 카메라가 처음으로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다른 회사들을 뒤따르기는 했지만, 고품질 AF 기능을 가진 “EOS-1”은 스포츠와 기타 동작 중심의 장면들을 포착해야 했던 전문 사진 작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캐논은 1990년에 “EOS 10”을 출시했습니다. 이 카메라는 사용자가 그들이 대체 실행하고자 하는 견본 사진으로부터 해당 바코드 데이터를 간단히 입력하기만 하면 의도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주는 바코드 시스템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 바코드 시스템은 카메라 업계에 상당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같은 해 10월에 모든 특징을 총 망라하는 경량 및 소형 모델, “EOS 1000QD”가 소개되었습니다. 이 카메라의 무게는 전지를 포함하여 500g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991년 8월에 또 다른 모델이 EOS 진용에 추가되었는데, “EOS 100QD”는 세계 최초로 정말로 조용한 SLR이었습니다. 새로이 개발된 저소음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이 카메라는 필름 진행 및 되감기 작동 소음을 이전 모델에 비해 1/2-1/8만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 EOS 계열 제품은 정말로 SLR 시장을 활성화시켰습니다.
EOS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시작된 EF-시리즈 렌즈 개발로 그 마운트를 포함하여 FD 렌즈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렌즈가 만들어졌습니다. 새로운 마운트 시스템을 디자인하는데 있어 캐논은 사용자 만족에 최우선을 두었습니다. 캐논은 또한 35mm AF SLR을 사용자와 미래에 공유할 이상적인 방법을 고려하여 사용자들의 아이디어를 새로운 마운트 시스템에 통합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카메라 몸체와 렌즈 간에 고도로 정확한 실시간 자료를 전송할 수 있도록 해주는 완전히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자동 EF 마운트를 만들어 냈습니다. 개발 단계 에서 캐논은 새로운 렌즈로의 전환에 대해 어떻게 사용자의 이해와 동의를 구할 것인지에 대해 협의했습니다.
그 해결 방안으로서 회사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EF 렌즈 상용화 기본 지침을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초고속 AF 및 무소음 작동의 특성이 실현되었습니다.내부 직경 54mm(외부 직경 65mm)의 EF 마운트는35mm SLR 카메라용 렌즈 시스템 중 가장 큰 공간 구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 구경 EF 마운트 덕분에 “EF50mm f/1.0L USM” 렌즈를 35mm SLR 카메라용으로 디자인된 세계에서 가장 밝은 렌즈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EOS와
EF 시리즈 렌즈 마운트 시스템
EOS용 EF시리즈 교환 가능 렌즈를
수용하는 LX-1
989년 캐논은 스테레오 음성 장치를 내장한 새로운 8mm 비디오 표준, “Hi-8 형식”인 “캐노비전 8 A1”을 출시했습니다. 1990년에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비디오 캠코더, “UC-10”이 출시되었습니다.
마침내 1991년에 캐논의 이름에 가장 걸맞은 제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교환 가능 렌즈를 장착한 8mm 비디오 캠코더, “LX-1”을 출시했습니다. VL 렌즈 장착 표준을 이용하여 “LX-1”은 교환 가능 렌즈 사용을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VL 마운트 시스템에서는 렌즈 데이터가 마이크로 컴퓨터를 내장한 교환 가능 렌즈를 통하여 카메라에 보내지면, 그 정보를 기반으로 카메라는 제어 명령을 렌즈에 보냅니다. VL 렌 즈 마운트 시스템은 다른 4개 회사의 협력을 얻어 캐논이 표준화했으나, 캐논만이 그 시스템을 이용한 캠코더를 실제로 출시한 유일한 회사였습니다. LX-1은 전용 교환 가능 렌즈와, EOS 카메라용으로 디자인된 EF 렌즈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델은 미국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재래식 카메라와 비교할 때 스틸 비디오(SV) 카메라의 이점은 필름 현상 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촬영 결과를 즉시 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SV 카메라의 단점은 그 가격이었는데, 예를 들면 “RC-701” 카메라는 그 몸체만도 60만 엔이었습니다. 1987년에 소개된 “RC-760”의 가격은 약 60만 엔이었습니다. 이러한 값비싼 모델은 주로 미디어 전문가들이 사용했습니다. 일반 이용자들을 위한 부담 없는 가격의 SV 카메라를 공급하기 위해, 캐논은 10만 엔을 초과하지 않는 가격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그 후 1989년 9월에 가격이 99,800엔인 “RC-250 (Q-PIC)”를 출시함으로써 이 목표를 달성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 두 모델, “RC-701”과 “RC-760”은 프린터, 송신기, 그리고 기타 여러 시스템과 함께 출시되었으나, “RC-250 (Q-PIC)”는 재생 기능을 내장하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비디오 단자를 가진 TV 수상기에 연결하여 사용자가 촬영한 영상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촬영”과 “보기” 기능을 모두 갖춘 카메라가 폭 넓게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RC-250”은 “ION”이라는 이름으로 특히 유럽 시장에서 히트 상품이 되었습니다.
가격이 10만엔 이하인 SV카메라
RG-250(Q-PIC)
EF 300mm f/2.8L USM을 장착한
EOS-1N의 횡단면
1989년에 그 모습을 드러낸 EOS-1은 전문가 또는 고급 아마추어 사용자들의 인정을 받았고, 캐논의 가장 발달된 모델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광학 및 전자 공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보다 나은 기술 향상이 기대되었습니다.
캐논은 첨단 기술 업적을 토대로 렌즈 개발에 전념했고, 대구경 렌즈 및 초대형 망원 렌즈와 만족스럽게 작동할 수 있는 모델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했습니다. 사용자들의 열정적 요구에 부응하여 EOS 카메라 계통의 새로운 주력 제품인 EOS-1N을 1994년 11월에 소개했습니다.
EOS-1N의 탄생으로 사용자들은 고성능 렌즈 고유의 능력을 완전히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5 포인트 에어리어 AF, 포커싱 포인트에 연결된 16분할 평균 측광 센서, 그리고 필름 이송 및 구동 기어 소음의 감소와 같은 기능 이외에, 전문 사진 작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카메라의 운용성 및 견고성에 관한 향상된 특성을 “EOS-1N”에 적용했습니다.
또 다른 모델이 EOS-1N 계통에 추가되었는데, EOS-1N RS가 그것이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셔터 릴리즈시 뷰파인더 블랙아웃 현상이 없으므로 그 착각 순간을 포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정 박막 미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고정 미러를 이용하여 초당 10프레임의 속도로 고속 연속 촬영이 가능합니다.
완벽한 전문가용 카메라인 EOS-1N은 사용자들의 신뢰에 힘입어 6년간 계속적으로 주력 제품으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EOS Kiss가 1993년 9월에 소개되었습니다. Kiss는 “Keep it Smart and Silent, 민첩하고 조용하게”의 줄인 말입니다. “EOS Kiss”는 초보 SLR 카메라 사용자를 위한 입문 모델로서 작고 간편한 디자인과 자동 작동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한편, 발전된 모델의 성능과 경쟁하기 위한 AF 기능, 노출 메커니즘, 그리고 다양한 AE 모드를 내장하고 있었습니다. 입문자들과 창의적인 사진 예술 작가들의 폭 넓은 지지 아래 “EOS Kiss”는 대단한 히트 제품이 되었습니다.
1996년에 출시된 “신 EOS Kiss”는 보다 높은 성능, 보다 쉬운 운용성, 그리고 훨씬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점에서 EOS Kiss의 향상품이었습니다. 경량, 간편성 및 작동의 용이성이라는 EOS Kiss의 기본 개념을 계승한 신 EOS Kiss는 새로이 개발된 메커니즘인 3 포커싱 포인트를 가진 다중 BASIS AF 센서를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포커싱 포인트는 사용자가 수동으로 또는 카메라가 자동으로 선택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움직이는 피사체에도 Al Servo AF 동작 예측기는 자동으로 작동하여 즉시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처럼 신 EOS Kiss는 고급 모델과 대등한 사양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쉬운 조작감으로 여성에게 강하게
어필했던 'EOS Kiss'카탈로그
캐논은 사용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어필했던 EOS 시리즈에 혁신적인 기술을 계속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1992년 11월에 나타났습니다. EOS 5QD는 1990년대의 대표적 카메라로 불릴 수 있었습니다.
EOS 5QD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안구 제어 초점 시스템이었습니다. 캐논은 사용자가 5개의 포커싱 포인트 중 한 곳을 보자마자 카메라가 그 지점에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획기적인 꿈과 같은 기능을 개발했습니다. 자동 초점 시스템은 1995년 9월에 출시된 “EOS 55”에서 개선되었습니다. 3 포인트 에어리어 AF 및 초당 2.5프레임 속도의 연속 촬영과 같은EOS 5QD의 사양을 기반으로 한 “EOS 55”는 수직 촬영 중 안구 제어 포커싱과 빠르고 쉬운 작동을 위한 이중 다이얼, 이중 레버 시스템을 포함한 여러 가지 향상된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완전 자동 AF 시스템을 장착한 인기 있는 소형의 렌즈-셔터 모델은 서로 다른 길을 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고도의 정밀한 영상을 추구하는 완전한 사양을 갖춘 모델에 이르는 길과, 부담 없는 사진 촬영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순한 특성을 가진 일반 사용자들을 위한 모델에 이르는 또 다른 길이 그것이었습니다.
1992년 9월에 출시된 “오토보이 A(Ace,최고)”는 38-76mm 줌 렌즈 및 중간 회전 중 교환 가능(midroll-switchable) 파노라마 형식과 같은 고급 사양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기타 특징으로는 표준 장비로서의 무선 원격 제어 장치, 인쇄용 다섯 가지 선택 가능 자막, 그리고 조용한 필름 이송 메커니즘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음 해 9월에 “오토보이 S(Super)”가 출시되었습니다. 이 모델은 7가지 AE 모드 설정이 가능한 최상 촬영 다이얼(Best Shot Dial)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10월 “오토보이 SE”가 출시되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리튬 건전지와 연계하여 태양열 건전지를 이용한 세계 최초 에너지 보존 및 환경 친화적 카메라였습니다.
대량 시장 측면에서, 커다란 뷰파인더를 지닌 사용하기 쉬운 “BF35(Big Finder)”가 1992년 3월에 출시되어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단일 셔터 속도 1/125초와 고정 초점 거리를 가진, 1992년 9월에 출시된 “CB35M”과 같은 사용하기 쉬운 여러 가지 카메라들이 출시되었습니다.
고급 사진 시스템은 다섯 회사, 즉 캐논, 이스트만 코닥, 후지 포토 필름, 미놀타, 그리고 니콘 등이 공동으로 개발하여 1996년 2월 1일 발표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는 IX240이라는 새로운 필름 형식이 사용되며 사용되는 필름의 폭은 24mm입니다. 필름 카트리지의 필름 장착은 삽입식으로 가능합니다. 이 새로운 시스템 출현으로 틀림없고 쉬운 필름 장착을 실현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소형 카메라의 개발이 가속화되었습니다. APS의 필름을 이용하면 카메라로부터 나오는 자료를 자기적 뿐 아니라 광학적으로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는 영상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APS는 사진술의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탁월한 시스템입니다.
캐논의 첫 번째 APS 카메라, “IXY”가 1996년 4월에 출시되었습니다. 그 크기는 재래식 소형 카메라보다 30%가 더 작은 60mm(높이) x 90mm(폭)였습니다. 카메라 몸체는 카메라에 적절한 무게를 주기 위해 스테인리스 강판 합금(SUS316)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상적인 무게의 소형 카메라는 사진 촬영 시 안정감을 증대시켰고 사용자에게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소형, 단순성, 고품질”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카메라 작동 또한 매우 간단했습니다. IXY는 출시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다른 카메라 제조 회사들의 APS를 선도했고, APS하면 캐논으로 널리 인식되었습니다.
캐논의 첫 번째 APS SLR 카메라, “EOS IXE”가 1996년 10월에 출시되었습니다. EF 렌즈와 교환 가능한 이 카메라는 풍부한 사진 표현을 생성할 수 있는 소형 AF SLR 카메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APS의 독특한 간편성과 함께, 이 모델은 3 포인트 포커싱 포인트를 가진 안구 제어 포커싱과, 6분할 평균 측광을 포함한 EOS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 받았습니다. 이처럼 APS와 EOS 개념의 융합으로 혁신적인 APS SLR 카메라가 실현되었습니다.
APS의 이용과 더불어, 전례 없는 “IXY”의 소형화가 실현되었으나, 캐논은 개발 과정에서 아주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카메라 몸체를 소형으로 만들기 위해 렌즈는 물론 구조도 더 작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IXY의 디자인 방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은 그 디자인이 얼마나 작은지를 보여주기 위해 10엔짜리 동전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구상하고 있는 6매/ 6군 비구면 렌즈의 횡단면이 10엔짜리 동전보다 직경이 더 짧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시연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마침내 디자인 착수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비디오 캠코더 산업에서는 매 10년마다 형식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베타, VHS, 8mm 등과 같은 경우입니다. 1990년대 전반기는 비디오 캠코더가 재래식 아날로그 시스템으로부터 DV 형식(세계적 표준)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였습니다.
캐논은 자기 테이프를 이용한 디지털 녹화/재생 기술을 개발하면서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를 개발할 목적으로 DV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안구 제어 포커싱과 광학식 이미지 흔들림 방지 기능을 특징으로 하는 1994년의 “무비보이 E1”과 안구 제어 포커싱 기능을 가진 1995년의 “무비 보이 E2”와 같은 Hi-8 비디오 캠코더를 소개하면서도, 캐논은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 개발에 전념했습니다.
캐논의 최초 디지털 카메라
PowerShot 600
디지털화의 파도는 텔레비전상에서 볼 수 있도록 전용 플로피 디스크에 영상을 기록했던 SV 카메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신속하게 사방으로 보급되어 영상을 컴퓨터에 올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사용자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개발팀으로부터도 샘물처럼 솟아 올랐습니다.
가장 적합한 디지털 녹화 기술이 대단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는 이미지 센서 장치(CCD)가 고도로 정밀한 영상을 생성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또한 오늘날 널리 이용되고 있는 컴팩트플래시와 같은 반도체는 그 당시 너무 비쌌습니다. 영상을 디지털 신호로 기록하는 카메라가 널리 인정받으리라 예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992년 출시된 고품질 SV 카메라, RC-570과 더불어, 캐논은 SV 카메라의 생산을 멈추고 디지털 카메라로 전환했습니다. 1995년 EOS DCS를 일련의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로 이스트만 코닥사와 공동으로 출시했고, 뒤이어 1996년 7월에 일반 사용자를 위한 모델, PowerShot 600을 출시했습니다. CF 또는 PC카드를 기록 매체로 사용한 PowerShot 600는 캐논 디지털 카메라 시대의 전면적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45지점 영역 AF기능이 특징인
EOS-3 카탈로그 표지
1990년 후반기에 새로운 EOS모델이 잇따라 출시되었습니다. 1998년 11월에 출시된 EOS- 3는 어느 제품에도 뒤지지 않는 최고급 카메라를 대표했습니다. 고품질 카메라를 위한 개발 목표가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포커싱 포인트에 연결된 21분할 평균 측광 센서, 45포인트 에어리어 AF, 그리고 개선된 속도와 정밀성을 지닌 안구 제어 포커싱 시스템을 가진 카메라가 탄생했습니다. 혁신적인 특성 중에서 AF 메커니즘의 커다란 발전은 놀랄만한 점이었습니다. 포커싱 포인트의 수는 중앙에서 하나로 시작하여 3 포인트, 그리고 5 포인트로 증가했습니다. 마침내 45 영역 자동 초점 포인트가 “EOS-3”에서 달성되었습니다. 45영역 모두 안구 제어 초점 시스템과 연계된 수직 및 수평 위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EOS-3의 견고성과 신뢰성은 고급 사양과 잘 어울렸습니다. 고급 기능들을 갖춘 EOS-3은 당시의 지배적 주력 제품인 “EOS-1N”을 능가하였으므로 상당한 자극을 불러 일으켰고, 고급 아마추어 및 전문 사진 작가들로부터 신뢰를 획득했습니다.
아마추어 및 전문가들이 공히 세계 도처에서 사진 촬영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택한 EOS- 1N은 2000년 4월에 EOS-1V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훨씬 더 빠르고 더 정밀한 AF 메커니즘, 고속 연속 촬영, 그리고 입증된 견고성을 바탕으로 한 신뢰성의 목표와 더불어 개발된 EOS-1V는 전력 증폭기를 사용하여 초당 9프레임까지의 고속 연속 촬영에 적합하도록 장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EOS 3의 성능을 더욱 개선하기 위해 정교한 고속/고정밀 45포인트 영역 AF 및 21분할 평균 측광, 그리고 기타 첨단 메커니즘을 적용했습니다. 금속 다이 캐스팅과 플라스틱 주입 성형 기술을 결합한 고급 형틀 기술인 thixo-molding을 응용하여 캐논은 미와 기능의 결합 을 대표하는 굴곡 몸체 커버와, 동시에 단단하고 내구성 있는 마그네슘 합금 커버를 생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EOS-1V는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자세한 작동 설정을 할 수 있는 20가지 커스텀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첨단 기술을 가진 EOS-1V는 사진-언론 클럽의 제 17차 연례 카메라 그랑프리에서 그랑프리 상을 수상했습니다. EOS-1V는 새로운 세기의 가치에 적합한 선도적 SLR 카메라로서 카메라 산업계 내외에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45지점 영역 AF기능이 특징인
EOS-3 카탈로그 표지
AF시스템 시대를 상징하는 전자제어방식의
완전 자동 마운트를 가진 EF시리즈들
EF 시리즈 렌즈에는 초 광각 렌즈로부터 슈퍼 망원 렌즈에 이르기까지 50가지가 넘는 유형 이 있습니다. 그 진용에는 근접 촬영 렌즈, EF 50mm f/1.0과 같은 대구경 렌즈, 그리고 35mm-350mm의 고배율 줌과 같은 다양한 렌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일반 용도, 중간급, 그리고 전문가적 사양 렌즈들이 모두 시리즈로 제공됩니다. 이미지 흔들림 방지 기능의 IS 렌즈들도 진용에 포함됩니다. 이 렌즈들은 셔터 속도가 2스톱 더 빨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습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닌 다른 시리즈로는 피사체 왜곡 교정 및 원근감 제어 메커니즘을 가진 틸트 및 쉬프트 TS-E 시리즈가 있습니다.
다양한 모델들이 APS의 모델명 IXY로 출시되었습니다. 1997년 6월에 출시된 IXY 25 카메라는 30mm-60mm의 2X 고품질 줌 렌즈를 장착했습니다. 다음 해 3월에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3X 줌 렌즈 장착을 목표로 한 개발 노력의 결과 IXY 330을 소개했습니다. 동시에 APS SLR 카메라도 진행 중이었습니다. 최고의 판매를 기록한 “신 EOS Kiss”의 기본 성능과 APS의 특성을 결합하여, 캐논은 “EOS 50”을 1998년 3월에 출시했습니다. EOS IX50은 APS에서 오는 간편성의 이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작동이 쉽고 작고 가벼운 고급 기능의 SLR 카메라입니다. 이 카메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APS 카메라라고 극찬을 받았습니다.
간편성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어느 정도 비재래식 모델들도 새로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들 중 1999년 11월에 소개된 IXY D5 카메라는 5미터 아래까지 방수가 되었고, 저속 동조 및 수중 매크로 방식과 같은 6가지 플래시 모드는 물론 자동 날짜 기능을 내장하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둥글고 화이트 골드 및 밝은 녹색의 몸체로 신선하고 세련된 모습을 구현했습니다. IXY D5는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사용자들에 매력적인, 만능 카메라였습니다.
멋진 디자인의 방수용
APS카메라 IXY D5
창의적인 사진술을 사랑하는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POWERSHOT PRO70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디지털 카메라 IXY DIGITAL
디지털 카메라 및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의 발전은 1990년대 이래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컴퓨터와 통신 네트워크 발전과 더불어 이러한 제품들은 중요한 주변 장치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영역에서 캐논은 한편으로 1998년 3월에 EOS D2000, 그리고 같은 해 12월 에 EOS D6000과 같은 초고급 SLR 모델을 소개했고, 다른 한편으로 캐논은 대중 시장용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소개했습니다.
1988년 4월에 출시되었고, 81만 픽셀 CCD(Charge-Coupled Device, 전하 결합 소자) 영상 센서를 탑재하고 CF를 기록 매체로 사용하는 PowerShot A5는 포켓형 디지털 카메라로 인기를 획득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 PowerShot Pro 70이 출시되었습니다. 1988년 10월, 캐논, 이스트 코닥, 후지 포토필름, 그리고 마쯔시다 전기 공업 등의 4개 회사 는 DPOF(Digital Print Order Format, 디지털 프린트 지시 형식)라고 부르는 새로운 표준의 디지털 프린트 형식을 발표했습니다. 디지털 프린트를 위해 각 제조 회사들은 지금까지 영상과 출력 매수를 지정하기 위해 서로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DPOF 표준은 이러한 디지털 프린트의 사양을 표준화함으로써 개인적인 출력 작업은 물론 디지털 사진 출력소에서 불필요한 출력 명령 과정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 모델은 창의적인 사진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목표로 하여 1.68메가 픽셀 CCD와 조리개 우선 AE를 장착했습니다. 2000년 5월에 캐논은 가장 잘 팔리는 IXY고급 사진 시스템 의 디지털 버전, IXY DIGITA을 소개했습니다. IXY의 디지털화된 버전은 IXY 몸체 크기를 유지하면서 2.11 메가 픽셀 CCD를 장착했습니다.
이 카메라는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디지털 카메라(2메가 픽셀 CCD급 광학 줌 렌즈 장착)였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며 즉시 히트 상품이 되었습니다.
1997년 캐논은 자신의 최초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 “MV-1’을 출시했고, 이를 계기로 캐논은 DV 형식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MV-1은 다른 회사들이 사용한 인터레이스 스캔 CCD에 비하여 비디오 영상의 흔들림을 감소시켜주는 프로그레시브 스캔 CCD를 사용했습니다. 프로그레시브 스캔 CCD는 고급 기술을 이용하는 복잡한 신호 처리 과정을 필요로 하므로, 그 방법을 사용하기로 한 캐논의 결정은 영상 품질에 관해 결코 타협하지 않는 선도적 카메라 제조 회사로서의 회사 정책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1999년의 “MV-1” 이후, 소형 경량 고도의 영상 품질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 PV1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동영상뿐 아니라 스틸 영상도 기록 및 재생하는 메커니즘을 내장하고 있었습니다. PV-1은 2000년 5월에 FV10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 시리즈는 광학식 이미지 스태빌라이저 (이미지 흔들림 방지기, 고성능 줌 렌즈, 그리고 디지털 오디오 효과)를 장착했습니다.
이러한 고급 특성 때문에 이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는 쉽고 간단한 작동으로 촬영하기를 좋아하는 가족 사용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습니다.
전문 비디오 작가는 물론 고급 아마추어들을 위해, 캐논은 1998년 2월 XL1비디오 캠코더를 소개했습니다. 교환 가능 렌즈를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이미지 스태빌라이저를 지닌 3X 광각 줌 렌즈 및 16X 줌 렌즈와 같은 이 모델용 여러 가지 전용 렌즈 이외에 XL1은 LX1 Hi-8 버전과 같은 EF 시리즈 렌즈들과 호환이 가능했습니다.
제품의 기능성, 견고성 및 그 입증된 신뢰성 때문에 XL1은 국립 항공 우주국(NASA)의 공식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로 채택되었고 우주선에 탑재되어 우주 여행을 했습니다.
가정용으로 출시된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 PV-1
NASA 공식 디지털 캠코더로
우주 왕복선에 탑재된 XL1
325만 픽셀의 CMOS센서를
탑재한 디지털 SLR EOSD30D
전문가의 신뢰를 얻는
디지털 SLR의 최고봉 EOS-1D
디지털 카메라는 1990년대 후반에 시장에 처음으로 나왔으나 2000년 이후에 많이 보급 되었습니다. 디지털 SLR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가 일반 사용자에게 확대된 획기적인 제품은 2000년 9월에 출시된 EOS D30입니다.
SLR은 가격이 비싸서 전문 사진 작가들이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캐논이 개발한 325만 픽셀 의 CMOS 센서와 RGB 컬러 필터를 장착한 EOS D30은 독자적인 디지털 신호 처리 (DSP) 기술을 채용하였습니다. 제품 중에서 제일 작고 가벼운 몸체는 디지털 SLR이 크고 무겁다 는 일반적인 인식을 무너뜨렸습니다. EOS D30은 그림 아이콘으로 표시된 다양한 버튼들만을 선택하여도 고도의 촬영 기술을 사용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이미지 선택 모드와 전자동 모드와 같은 하이테크 편리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카메라의 35분할 평가 측광 기능과 내장 E-TTL 자동 플래시는 촬영 상황에 반응하여 가장 적절한 플래시 설정으로 자연스러운 사진을 효과적으로 촬영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표준 JPEG 포맷을 지원하며, 또한 D30은 컴퓨터에서 자유롭게 영상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신호 처리를 하지 않은 영상 데이터인 RAW 포맷을 지원합니다.
디지털 SLR은 두 가지의 새로운 최고의 모델에서 고화질과 고성능을 실현하였습니다. 2001년에는 스포츠와 뉴스 기자가 휴대하기 가장 적합한 최강의 카메라인 EOS-1D를, 2002년에는 인물 사진, 상품 촬영과 풍경 사진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작가를 위하여 개발 된 EOS-1Ds를 출시하였습니다. 이 두 모델은 사진 전문가와 디지털 사진의 완성도를 추구 하는 전문가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EOS D30과 보급형 모델 EOS Kiss Digital, 최고급 모델 EOS-1Ds까지, EOS 디지털 SLR 시 리즈의 고화질을 좌우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대형, 고감도의 CMOS 영상 센서입니다. 저소비전력과 저비용의 이점이 있는 반면, 영상과 화질을 손상시키는 저해상도와 노이즈 가 많다는 CMOS에서의 문제를 캐논의 기술로 극복하였습니다. 장시간 노출과 높은 ISO 감도로 촬영할 때 색상의 얼룩과 노이즈를 줄이는 반면, 하이라이트와 쉐도우에서 풍부한 계조를 얻을 수 있도록 개발된 CMOS 센서는 EOS 시리즈의 진화의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CMOS의 해상도는 325만 픽셀(EOS D30)에서 약 630만 픽셀(EOS Kiss Digital)까지 올라 갔 습니다. 세계 최초의 풀 프레임 1100만 픽셀의 CMOS 센서가 탑재된 EOS-1Ds의 개발은 강력한 센서 기술의 최고봉에 도달했습니다.
지속적인 개선의 노력으로 SLR용의 교환용 AF 렌즈인 캐논 EF 렌즈가 제작되어 왔습니다. 2001년, 캐논은 신개발 복층 회절광학(DO) 소자를 사용한 최초의 줌 렌즈, EF400mm F4 DO IS USM를 발표하였습니다. DO 렌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굴절 렌즈에서 발생하는 색채의 수차를 이상적인 상태로 철저하게 수정하고 높은 수준의 해상도와 색상 대비로 선 명하고 명확한 영상을 재현하는 능력입니다. DO 렌즈의 사용으로 망원 광학 시스템의 전 장을 과감하게 줄였으며, 저밀도 글래스의 적용과 밝기를 위한 렌즈 수의 축소가 가능하여 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망원 줌 렌즈와 연관된 이미지 흔들림 감소 기술은, 방진, 방수 기능과 더불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고화질을 실현한 325만 픽셀의
대형 CMOS 센서
신개발 복층 회절 광학(DO)소자를 사용한
최초의 줌렌즈로 어필했던 'EOS Kiss'카탈로그
EF400MMF/4 DO IS USM
2002년 9월, 캐논은 고해상도, 400만 픽셀의 CCD 센서와 4배 광학 줌 렌즈, 최대 조리개 범위가 f/2.0-3.0인 최상의 기종 PowerShot G3를 발표하여 PowerShot 제품군을 강화시켰습니다. 또한 세로나 가로로 촬영한 영상의 변화를 보정하는 새로운 SI (Super Intelligent) 센서와 사진 피사체를 분석하여 AF, AE, AWB를 조절하는 iSAPS 기술을 채용하였습니다. 15초에서 1/2000초의 폭넓은 셔터 스피드의 범위를 가지고 배경 흐림의 연출과 매크로 촬영시 플래시 사용이 가능한 내장 ND(Neutral Density) 필터를 장착하였습니다. 이전의 디지털 카메라의 일반적인 결함은 반응 속도가 늦은 것으로 좋은 촬영 순간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개발 DIGIC 신호 프로세서는 범용 프로세서보다 더욱 향상된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어 CMOS 센서 또는 CCD 센서로 촬영한 많은 양의 이미지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습 니다.
고속의 신호 처리 속도와 노이즈 없는 향상된 화질을 위한 신호 처리를 가능케 하는 DIGIC 영상 프로세서는 일반 사용자용 디지털 카메라의 표준 구성이 되었습니다. 2003년 3월에 발표한 PowerShot A70/A60은 5포인트 AiAF (Artificial Intelligent Auto-Focus ; 인공지능 자동 초점) 시스템과 DIGIC 프로세서와 iSAPS 기술을 탑재하였습니다.
AiAF는 자동으로 피사체의 위치나 움직임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기준으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초점 포인트를 선택합니다. 이전에 3개에서 5개로 늘어난 초점 포인트는 자유로운 구도가 가능하고, 5개에서 12개로 증가한 촬영 모드는 다양한 환경에 적합한 촬영이 가능합니다.
DIGIC과 iSAPS 같은 첨단 디지털 영상 기술이 새로운 세대의 제품에 적용되었습니다. 2003년 3월, 세련된 디자인의 초소형 모델 IXY DIGITAL 320이 보급형 가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높은 해상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카메라는 새로 개발된 1.2/2.7인치 320만 픽셀의 CCD 센서를 탑재하였습니다.
APS 기술의 대명사로 알려진 "IXY" 시리즈는 고속과 플러그 앤 플레이 기능을 구현한 디지털 카메라 브랜드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조리개 범위가 큰 4배 광학줌 렌즈와
400만 픽셀 CCD를 탑재한
POWERSHOT G3
더욱 작고, 가벼우며, 더욱 유행에
맞게 변한 POWERSHOT A70
320만 픽셀 CCD와 2배 광학줌 렌즈를
가진 매끈한 보급형 모델
IXY DIGITAL 320
22배 광학 줌 렌즈의 컴팩트 디지털 캠코더 FV30
디지털 캠코더는 빠르게 발전된 기술에서 얻은 또 하나의 사진 장비입니다.
고성능의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확산이 디지털 비디오의 편집과 전송을 위한 환경을 증진시키고 그로 인하여 사용하기 편리한 디지털 캠코더의 요구가 높아 졌습니다.
캐논은 2002년 2월에 FV30KIT, 3월에 FV200KIT, 두 가지의 디지털 캠코더를 출시하였습니다. FV30KIT는 작고, 휴대하기 좋은 몸체와 강력한 22배 광학 줌 렌즈를 장착하였습니다. 또한 정지 영상 파일을 보관하기 위한 멀티미디어 카드와 SD 메모리 카드를 지원하도록 메모리 카드 슬롯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FV200KIT는 다양한 기능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초보자용 캠코더입니다. 이 캠코더는 18배의 광학 줌 렌즈와 어두운 곳에서도 촬영이 가능한 나이트 모드를 탑재하였습니다.
캐논은 초보자에서 전문가까지 선택할 수 있는 폭넓은 캠코더의 제품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XL1S과 GL1은 프로와 고급 아마추어를 위하여 만든 모델입니다. 백만 픽셀의 PV130은 중간층의 모델이고, IXY DV2 M2은 디지털 비디오와 디지털 정지 영상 모두 고화질이며 매우 작고 가볍습니다.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것은 FV30KIT와 FV200KIT입니다.
이 캠코더의 비구면 렌즈는 자연스럽게 왜곡을 보정하고 매우 섬세하게 피사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은 또한 렌즈 유닛을 매우 작게 만들게 하였습니다. 효과적인 이미지 흔들림 방지 시스템은 카메라 흔들림을 제거하도록 개발되어 망원촬영에도 흔들림 없이 가능합니다. 건전지, AC 어댑터와 케이블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하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2004년 7월, 렌즈 교환이 가능한 최고의 디지털 캠코더 모델 XL2를 출시하였습니다. 이는 종래의 전문 카메라를 대치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으며, 필름으로 촬영하는 영화와 광고 촬영에 완벽한 제품입니다. CG와 특수 효과를 처리할 수 있는 높은 성능을 가진 XL2는 다양한 미디어로 비디오 영상을 처리하는 전문가의 요구를 충족시킵니다. XL2는 고해상도 16:9 비율과 진보된 CCD 기술을 위한 1/3인치 68만 픽셀의 프로그레시브 스캔 3CCD와 같은 전문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특징으로 캐논의 최고급 캠코더에 어울리는 높은 수준의 화질을 실현하였습니다.
비디오와 정지 영상이 고화질이며
매우 작고 가벼운 캠코더 IXY DV2 M2
렌즈 교환이 가능한 최고의 캠코더 XL2
비디오와 정지 영상이 고화질이며
매우 작고 가벼운 캠코더 IXY DV2 M2
캠코더의 정지 영상 화질을 높이고 기능의 확장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습니다. 비디오와 정지 영상의 화질을 높이는 방법으로 200만 픽셀 또는 그 이상의 CCD, 높은 색상 재현을 위한 RGB 원색 필터와 DIGIC DV 고성능 신호 처리 회로의 결합을 채택하였습니다.
새로운 DIGIC DV 영상 처리 엔진을 개발한 결과, 2003년 7월에 FV M1 KIT와 IXY DV M2 KIT를 발표하였습니다. 새로운 DIGIC DV 회로는 캐논이 축적한 영상 노하우와 고화질이 필수인 고속 디지털 처리 기술을 하나의 칩으로 통합하였습니다. DV Messenger 2는 디지털 캠코더를 인터넷에서 쌍방향 통신으로써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되어 기본 제공되는 유틸리티 소프트웨어입니다.
캠코더를 화상 전화와 같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상 처리 엔진을 개발, 향상시키려는 포괄적인 노력과 디지털 영상과 다양한 콘텐츠를 촬영하고 처리하기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통하여 캐논은 비디오와 정지 영상 사이의 경계를 넘는 디지털 영상의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어 갈 것입니다.
캐논의 발전된 CMOS 이미지 센서
제조 기술로 놀랍도록 저렴해진
EOS 5D
라이브 뷰 비디오 기능을 갖춘
캐논의 플래그십 모델
EOS-1D Mark III
2003년의 고화질 디지털 지상파 방송의 출현으로 고화질 비디오 장비의 사용은 급작스럽게 가속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높은 성능을 제공하는 카메라 센서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일반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풀사이즈 35mm DSLR 카메라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풀사이즈 35mm SLR 카메라는 가격이 100만엔을 넘어,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는 거의 구입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 10월, 그 틀을 깨고 캐논 EOS 5D가 데뷔하였습니다. 가격은 30만엔 대로, 기존의 어느 때보다도 저렴하여 일반 사용자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획기적인 가격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캐논이 독자적인 스테퍼 (축소 투영 노출 장치)로 CMOS 이미지 센서 제조 기술을 개선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혁신은 풀사이즈 DSLR 카메라의 시대의 막을 열었으며, 다른 카메라 제조사도 곧 CMOS 이미지 센서를 업데이트하게 됩니다.
2007년, 사용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여 혁신적인 라이브 뷰 비디오 기능을 가진 두 개의 모델이 등장했습니다. 5월 5일, 전문가용 APS-H 사이즈 디지털 SLR 카메라인 EOS-1D Mark III가 출시된 데 이어, 11월에는 약 2,110만 화소의 35mm 풀사이즈 CMOS 이미지 센서를 탑재한 EOS-1Ds Mark III를 출시하였습니다. 이 혁신은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가진 DSLR 카메라의 등장을 예고하였습니다.
* 반도체 제조 장치의 일종. 한 장의 실리콘 웨이퍼에서 수 백 개의 반도체 마이크로칩을 순차적으로 이동 (스텝)하면서 노출합니다.
E2008년, 캐논은 누적 5,000만 대의 SLR 카메라를 생산하였으며, 같은 해 디지털 SLR 카메라의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추가하였습니다.
11월, 캐논은 독자적인 고속 신호 판독 회로를 탑재한 35mm 풀사이즈 CMOS 이미지 센서를 개발하여, Full-HD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가진 업계 최초의 DSLR 카메라인 EOS 5D Mark II를 데뷔시켰습니다. 그 획기적인 기술은 높이 평가되어 2009년 [TIPA Best Digital SLR Expert Camera Award], [Camera Grand Prix 2009]의 “Camera of the Year”; [EISA European Advanced Camera Award 2009–10] 등 3대 국제 카메라상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또한 방송국은 이 새로운 비디오 카메라가 동영상과 정지 영상을 융합하는 것에 주목하여 2009년 10월 시작한 TV 아사히의 글로벌 로드 투어 프로그램 "Sekaino Kaido-wo Iku"에 채용하였습니다.
2009년 9월에는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용으로 개발된 캐논 고유의 1,000만 화소 CMOS 센서를 탑재한 PowerShot SX1 IS를 출시하였습니다.
DSLR 카메라 최초로 Full-HD
동영상 촬영 기능을 탑재한 EOS
캐논 고유의 1,000만 화소
CMOS 센서를 탑재한
PowerShot SX1 IS
화소의 크기를 최소화한 고감도,
저노이즈 카메라로 주목을 받은
EOS 7D
APS-H 사이즈로 세계 최고인 약 1억
2,000만 화소의
CMOS 이미지 센서
*2010년 8월 20일 기준
SLR 카메라 출시 50주년을 맞은 2009년 10월, 캐논은 새로운 영역 센서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고급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픽셀 크기를 4.3×4.3 µm까지 최소화하면서도 고감도, 저 노이즈를 실현한 EOS 7D입니다. 7D는 세계 최초로 1,800만 화소의 CMOS 이미지 센서 (APS-C 사이즈)를 탑재하였으며, 듀얼 DIGIC 4 고성능 영상 처리 엔진을 채용하였습니다. 또한 상용 ISO 감도 100–6400, ISO 확장 기능을 사용하면 최대 감도 12800이 가능한 최첨단 디지털 SLR 카메라로 시선을 끌었습니다.
캐논의 CMOS 이미지 센서의 진화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2010년 8월, 캐논은 APS-H 광학 포맷 약 1억 2,000만 화소 (13,280×9,184 화소)의 CMOS 이미지 센서를 발표했습니다.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이 픽셀 수는 사람 눈의 시세포 수와 같은 정도이며, 2010년 8월 20일 시점에서 또 다른 세계 최초의 혁신이었습니다.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의 역사를 보면, HDTV 방송이 제품 진화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3년 9월, 샤프, 소니, JVC, 캐논은 고화질 캠코더용으로 HDV 파일 포맷 규격을 제정하였습니다. 2005년 11월, 캐논은 전문가용 미니 DV 테이프에 고화질 비디오를 HDV 포맷으로 녹화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한 XL H1을 소개했습니다. 2006년 9월, 캐논은 아마추어 시장을 대상으로 오랜 시간 준비해 온 동영상용의 캐논 HD CMOS 이미지 센서를 탑재하여, 당시 최소/최경량의 고화질 디지털 촬영 HDV 비디오 카메라 iVIS HV10을 출시하였습니다.
비디오 카메라로 디지털 방송의 화질을 실현하려면 HDTV 픽셀을 읽는 속도가 중요합니다. 캐논은 기존 CCD의 성능을 뛰어넘는 CMOS 센서로, 디지털 SLR 카메라가 이 벽을 허물었음을 입증하였습니다.
2007년 8월에는 기록 매체에 40GB 하드 디스크를 내장한 iVIS HG10이 업계 최초로 등장하여, HDTV용 고화질 동영상을 최대 15시간** 기록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2009년 2월에는 캐논의 Full-HD CMOS 및 DIGIC DV III를 탑재한 iVIS HF S10과 iVIS HF20을 출시하여, 디지털 HDTV용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의 진화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고화질 촬영이 가능한 HDV
규격 대응의 HD 캠코더
XL H1
캐논 HD CMOS 센서를
채용한 세계 최소/최경량의
HDV 규격 대응 비디오
카메라 VIXIA HV10
*2006년 7월 26일 기준
내장 하드 디스크에 고화질
비디오를 장시간 기록할
수 있는 VIXIA HG10
비디오 카메라
최고급 CMOS 이미지 센서,
렌즈, 영상 엔진을 탑재하여
소비자용 비디오 카메라 중
최고 수준의 수평 해상도를
제공한 VIXIA HF S10
캐논 Full-HD CMOS 및
DIGIC DV III 이미지
프로세서를 탑재한
VIXIA HF20 비디오 카메라
2008년 4월 EF 렌즈의 누적 생산 대수가 4,000만 대에 도달했고, 이 즈음 렌즈 기술에는 눈부신 혁신이 이루어졌습니다. 9월, 캐논은 빛의 반사로 인해 발생하는 고스트 및 플레어 현상을 최소화하는 특수 코팅 SWC (Subwavelength Structure Coating)를 개발하여 기존의 코팅 기술로는 억제할 수 없었던, 입사각이 큰 빛에 대해서도 뛰어난 반사 방지 효과를 실현하였습니다. SWC를 채용한 TS-E17mm F4L 렌즈는 유럽의 명망 있는 상인 [TIPA Best Photographic and Imaging Products 2009]의 전문가 렌즈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또한 2009년 10월에는, 각 흔들림과 시프트 흔들림을 모두 최적으로 보정하는 새로운 손떨림 보정 기술인 하이브리드 IS를 최초로 채용한 EF100mm F2.8L Macro IS USM 렌즈를 출시하여 핸드헬드 고정밀 근접 촬영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2009년 12월, 캐논의 EF 렌즈 누적 생산 대수는 5,000만 대를 기록했습니다.
DIGIC 이미지 프로세서도 이 시기에 크게 발전했습니다. 최첨단 DIGIC 4는 노이즈 감소 및 장면 인식 기술 등의 새로운 기능을 탑재하고, 얼굴 인식 및 모션 인식 기술을 향상시켰습니다. DIGIC 4는 PowerShot SD960 IS DIGITAL ELPH 및 PowerShot D10 등에 처음으로 탑재되었으며 현재도 PowerShot 시리즈와 EOS 시리즈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역사가 20년이 채 안 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2005년에서 2010년은 캐논이 감도, 화소수, 동영상 성능 등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였습니다. 이 큰 발전의 핵심 기술로는 캐논이 타사보다 앞서 개발한 CMOS 센서가 있습니다. 캐논은 CMOS 이미지 센서의 장점을 발휘하면서 주변 기술도 개선하여 상상을 초월한 새로운 디지털 이미징의 시대를 개척하려 합니다.
각 흔들림과 시프트 흔들림의
도해
각 흔들림과 시프트 흔들림을
모두 보정하는 새로운 이미지
스태빌라이저 하이브리드 IS를
채용한 EF100mm F2.8L
Macro IS USM 렌즈
고속 처리 및 고화질 성능을
실현한 DIGIC 4 영상 엔진
4x 줌 렌즈, 1,210만 화소
CCD, 16:9의 와이드 화면을
지원하는 2.8형 클리어 라이브
II LCD를 탑재한 PowerShot
SD960 IS DIGITAL ELPH
뛰어난 방수/방진 성능,
내한성, 충격 방지 성능을
갖추어 해변 및 설산 등의
야외 활동에 이상적인
PowerShot D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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